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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봇 Sep 07. 2024

발작

"발작이요!!"  


10살 말티즈 루이가 온몸을 격렬하게 덜덜 떨고 입가에는 거품 섞인 침을 흘리 안겨 들어왔다. 눈은 허공을 향해 떨리며 초점 없이 흔들렸다. 산소마스크 씌어 주고, 안구를 압박하며, 항경련제를 투여했다. 다행히 발작은 멎었지만, 루이의 목은 왼쪽으로 심하게 돌아가 있었고 (사경), 눈이 빠르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안구진탕). 루이는 여전히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루이가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 걱정하고 계실 보호자님께 나갔다.


"선생님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보호자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보호자님. 일단 발작은 멈췄습니다. 보호자님이 잘못하신 것은 없어요. 처음 발작하는 것을 보셨다면 정말 놀라셨겠습니다." 


창백했보호자님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요즘 조금 멍해 보인다 싶었고 지금까지 아픈 적 없이 계속 건강했어요. 강아지도 사람처럼 경련을 하나 보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얼른 데리고 왔어요. 루이 살 수 있는 건가요? 앞으로 경련은 계속하는 건가요?"


보호자님은 걱정되었던 마음의 크기만큼 빠르게 질문을 쏟아내셨다.


"그럼요. 사람도 강아지처럼 발작, 경련을 할 수 있습니다. 살 수 있는지는 치료를 해봐야 할 것이고요. 앞으로 발작은 원인에 따라 지속될 수 있고, 왜 발작을 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작은 크게 몸 안의 장기 내부에 이상이 있는 경우와 뇌에 문제가 있는지로 나뉜다. 장기 내부라면, 종양, 간, 신장기능 저하 등등 다양한 원인이 있고, 뇌 쪽에 문제가 있다면 MRI 촬영이 필요하며 크게 염증, 출혈, 폐색, 종양과 같은 병변이 원인이 된다.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꼼꼼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보호자님께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확인한 후에 다시 루이에게 돌아가서 필요한 전반적인 검사들을 진행했다. 검사결과를 종합해 보니, 뇌 쪽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며, MRI 촬영이 필요했다.


보호자님께 MRI 촬영 필요성에 대해 말씀드렸다. 발작을 하는 아이의 경우,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필요성과 위험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드렸다.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말에 보호자님은 망설이셨다. 고민 끝에 MRI 촬영에 동의해 주셨다.


MRI는 보통 한 시간 정도 필요하다. MRI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마취에서 잘 깨어날까 하는 걱정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다행히 루이는 마취에서 잘 회복했고, 추가 발작은 없었다. 마취약에 취한 루이는 멍한 채로 비틀거렸고 일어났다가 넘어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지쳤는지 입원장 안에 축 처져있었다. 불안한 마음 가득 앉아계시지도 못하고, 동물병원 대기실을 서성이는 보호자님을 찾아 말씀드렸다.


"보호자님, 다행히 루이가 마취에서 잘 회복했습니다. 정확한 소견은 내일 안내드릴 수 있지만, 일단 주된 원인은 발작의 주된 원인은 뇌경색이었고, 뇌수두증과 뇌출혈이 동반해 있습니다. 뇌경색은 혈관이 막혀서 뇌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이 잘 공급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뇌졸중과 비슷해요. 뇌수두증이라는 것은 뇌척수액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서, 뇌척수액이 흐르는 공간이 커져있는 거예요. 추가로 뇌경색 원인은 찾아봐야 하고, 필요한 약들 잘 써서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말씀드린 병변들이 상당히 심한 편이어서, 앞으로 3일~5일 정도 고비입니다."


짧은 면회 후에 알겠다는 말씀만 남기고 보호자님은 귀가하셨다. 이후, 여러 가지 원인/증상에 따른 처치를 진행했다. 중간중간 짧은 발작이 있었으며, 그에 맞게 약물의 투여 용량을 조절했다. 


다음날 보호자님께서 면회를 오셨다. 하루 동안 루이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나의 말을 들으시곤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어제는 경황이 너무 없었어요 선생님. 우리 루이 잘 좀 부탁드려요. 저도 저인데 엄마가 얘 없으면 얼마나 슬퍼할지 상상도 안 가네요. 엄마도 많이 편찮으셔서 루이한테 많이 의지를 하고 있어요. 나을 수 있게 꼭 부탁드립니다. 루이가 없으면 엄마도 정말 슬퍼하실 거예요.."


보호자님 표정과 슬픔으로 무거워진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내 마음을 두드렸다. 이런 보호자님 마음을 아는지 루이는 무심하게도 옆으로 누운 상태로 전혀 일어나지 못했다. 


"루이야 좀 일어나 봐. 집에 가야지. 할머니 보러 가야지 루이야..! 아휴.. 제가 차라리 저기 들어가 있는 게 낫겠네요 선생님.." 




입원 3일쯤 경과하니 조금씩 의식이 또렷해졌고, 밥도 잘 먹기 시작했다. 조금씩 일어나려고 한다. 나도 감출 수 없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기쁜 소식을 보호자님께 전했다. 


입원 5일 차가 되자 주사제 없이 먹는 약으로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어 다행히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 날에는 보호자님의 어머님이 동행하셨다.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아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루이가 많이 좋아졌네요. 딸이 동영상을 찍어서 봤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 와보지 못했어요. 이제 일어나기도 하고 제가 부르면 알아보는 것 같네요. 잘 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루이는 보호자님께 안기자 부드럽게 꼬리를 흔들며 보호자님의 손을 핥았다. 


몇 번의 재진 기간 동안 루이는 서서히 기운을 되찾고, 작은 자극들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집안을 조금씩이나마 걸어 다녔으며, 보호자님이 부르면 걸어가서 안기기도 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는 다행히 추가 발작이 없었다.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던 것도 돌아왔고,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리는 증상도 사라졌다. 조금씩 약물을 줄여나가고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루이와 보호자님 그리고 어머님의 행복한 모습이 상상돼서 얇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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