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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부캐가 엄마였다.

본캐와 부캐를 넘나드는 나를 위해

by 감정메이트

아이 학교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던 중,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요즘 본캐, 부캐가 유행이라고 하면서 팀장님이 팀원들에게 별명을 붙여주며 무안을 주는 에피소드가 나왔다. 본캐는 원래 자기 캐릭터를 말하고, 부캐는 또 다른 캐릭터를 말한다.


에피소드를 들으며 잠깐 스쳤던 생각은 현재 나는 본캐인가 부캐인가이다.

육아를 하면서 잠시 나를 잊고 지내고 있었다. 내 이름보다는 채린이 어머님, 애기 엄마라고 불리는 게 더 익숙했다. 나는 아침에 아이가 남긴 밥을 먹기보다는 뜨끈뜨끈한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커피를 마셨던 사람이었다. 시크릿 쥬쥬, 브래드 이발소, 레이디 버그 만화보다는 예능이나 아이돌이 나오는 음악방송을 봤었다. 지금은 아이돌 중에 BTS 말고는 누가 누군지도 모른다. 주말에는 한껏 꾸미고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후식으로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한 후, 예쁘게 플레이팅 된 것을 사진 찍고 친구들과 셀카를 찍었다. 지금 내 핸드폰에는 아이 사진만 잔뜩이다. 연휴가 있는 날에는 언니 또는 친구들과 날을 맞춰 여행을 갔었다.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쇼핑을 했고, 밤에는 클럽에서 신나게 놀기도 했었다. 아이가 생긴 후에는 연휴가 찾아오면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것은 돈 주고 고생하러 가는 길이라 생각해서 어디 여행 갈 엄두가 안 났다. 좀 커서 데려가더라도 가기 전부터 아이가 필요한 물품은 왜 이리 많은지 트렁크의 거의 대부분이 아이 것이었다. 여행지에서는 아이를 위한 여행 코스를 짜야하고, 업고 안고 다니는 통에 저녁에는 잠자느라 바빴다.

꽃이 좋았던 나는 지금은 그 돈이면 마스크를 더 산다. 하이힐을 좋아했던 나는 지금은 편한 운동화나 플렛슈즈를 좋아한다.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던 나는 지금은 무조건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입는다. 긴 머리를 좋아했던 나는 지금은 짧은 단발이다. 커트로 자를까 고민 중이다. 매운 것을 좋아했던 나는 지금은 워낙 간을 싱겁게 해서 먹어서 맵찔이가 됐다.


아이를 싫어하던 나는 지금은 아이들이 귀엽다. 옷에 뭐 묻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나는 아이가 내 옷에 토하면 아이부터 걱정한다. 누가 잠 깨우는 것 싫어했던 나는 지금은 아이 이불이 잘 덮어졌는지, 아이가 아픈 날에는 수시로 깬다. 아침밥을 챙겨 주기 위해 올빼미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이 됐다.

내친구 J도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며 살았지만 지금은 아이 옷을 만들어 주고 베이킹이 좋은 엄마가 되었다. 내 언니 H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여자였다. 아이를 낳고 좌절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꿈을 이루기 위해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엄마들의 본캐는 엄마가 아니었다. 나였다. 부캐가 엄마였다.


지금의 나는 본캐 보다는 부캐가 좋다. 하지만 나를 잊지 않는 엄마로도 살고 싶다. 본캐와 부캐를 왔다 갔다 하는 이효리처럼 말이다.

오늘은 잠시 본캐로 돌아가려고 한다. 무릎 위 플라워 원피스에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고데기로 머리를 말아 예쁘게 화장을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맘껏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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