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할아버지는 내가 놀아주라고 해도 놀아주지 않아, 은채가 오면 자상하게 은채를 부르고 놀아주잖아”
“아 그건 이제 채린이는 많이 컸고, 은채는 아직 작아서 그런 거야”
“왜 몸집으로 비교하는데? 몸집이 작으면 이쁨받고, 몸집이 크면 이쁘지 않은 거야
나 상처받았어. 마음속에 있다고"
라고 말하며 아이는 갑자기 엉엉 울었다.
나는 말 없이 아이를 안아주었고, 화가 났다.
어릴 때, 나 역시 언니와 동생에게 끊임없이 비교를 당했다. 큰 언니는 공부를 잘해서, 남동생은 대를 이어 줄 귀한 아들이니깐, 둘째 언니는 워낙 멘탈이 강했기 때문에 상처는 나였다. 비교를 당해도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바빴고, 내 감정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비교는 항상 나를 괴롭혔고, 안 그래도 소심한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근데 손주들까지 차별하는 부모님 태도에 또 속상했다. 나까지 끝내면 좋은데, 왜 소중한 아이한테까지 상처를 주실까?
나는 아이가 들리도록 거실에 가서 부모님께 말했다.
“아빠, 엄마 채린이가 은채만 예뻐해서 속상하대.”
“우리는 그런 적 없다. 은채 아직 어려서 그런 거지”
“근데, 내가 봐도 엄마, 아빠네 차별하는 게 보여. 어린 채린이가 얼마나 상처받겠어. 똑같은 손주들이면 똑같이 예뻐해야지. 누구 하나만 이뻐하면 되겠어? 부탁할게. 아이들 보는 앞에서는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방으로 와서 아이를 다시 안아줬다.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까는 힘들었는데, 엄마가 내 편 들어주니 너무 좋아.”
“응 채린아, 엄마도 사실 이모들이랑 비교당해서 어릴 때 힘들었거든.. 근데 온전히 채린이 마음을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 엄마가 만약 큰 이모나 삼촌이었다면 채린이 마음을 이해 못 했을 거야. 아마 별일 아니라고 생각 했을지도 몰라, 근데 그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기에 채린이에게 힘을 주고 싶었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이가 있으셔서 어쩌면 또 채린이에게 상처를 줄지도 몰라. 근데 그냥 신경 안 쓰는 게 어떨까? 채린이 옆에는 이렇게 든든한 엄마가 있잖아.. 엄마는 어릴 때 아무도 없었거든. 채린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깐 다른 사람들이 주는 차별은 그냥 무시하는 거야”
“응, 엄마 엄마가 나 위로해주니깐 너무 좋아”
나는 자식이 딸아이 한 명이어서 자녀가 많은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는 거다.
우리는 사회에 나오면서 수많은 비교를 하며 산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를, 사회에 나와서는 좋은 직장 들어간 친구를, 결혼해서는 좋은 배우자 만난 친구를, 아이를 낳으면 자식 농사 잘 지은 친구를..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부러움과 질투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집에서까지 비교를 당하고 사는 아이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자아존중감이 높을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지 못하다.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서 비교하지 말자. 집에서만큼이라도 아이들을 똑같이 대해주자. 혹여 더 정이 가는 자식이 있더라도 둘이 있을 때만 표현하자. 만약 실수했다면.. 부모 둘 중에 한 분은 꼭 그 아이의 편이 돼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