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십대의 반란 Apr 02. 2022

캐나다의 인종주의

풍요로운 이 땅은 누구의 것인가?

코로나로 인해서 북미 지역은 인종주의(racism)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곳 캐나다는 코로나가 한창 퍼지던 2020년에만 2,669건의 아시아 혐오 범죄가 보고되었다 (CTV 2022.3.17). 흑인과의 갈등이 역사상 극심 했던 미국과는 다르게 캐나다는 세계 최초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헌법에 명시한 나라이다.


특히 일상에서 경험하게 되는 대다수의 캐나다 사람들은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서는 참 착한 분들이 많다. 아이들의 놀이 문화도 한국에 비해서 참 순한(?) 편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인종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이곳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질병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한 스노든(Snowden) 교수가 전염병이 사회의 취약한 곳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조한 것처럼, 감염병 코로나는 캐나다에 잠재된 인종주의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질병은 역사적으로 특정 집단을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어 왔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창궐 했을 때에 유럽인들은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 것이라고 매도 했고 (Horn 2020), 19세기 콜레라가 창궐 했을 때에는 아시아 콜레라라고 명명되었다 (Jain 2020).


이곳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본다면 아시아와 아일랜드 사람들이 이민자로 대거 들어온 근대에는 이들이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고, 전염병을 옮기는 이들로 호명 되었다. 19세기 중국인들은 이곳에 노동자로 들어와 캐나다의 철도를 깔았는데, 그 과정에서 탄생한 차이나타운은 여러 정부 문서와 언론을 통해 전염병의 온상지로 묘사가 되었다.


한편, 이런 편견 들은 정책으로 연결 됐는데, 20세기 초 특정지역 이민자들은 정신병 환자로 낙인찍혔다. 예를 들어 1900년에서 1940년까지 1만여명의 이민자들이 추방이 되었는데, 이중 10% 정도는 정신적인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고 쫓겨났다. 이중 영국인들의 비중은 6-7% 정도였는데 비해, 헝가리 사람 비율은 35%, 슬로베키아 이민자들은 65%에 달했다 (Beiser 2005).


이런 역사를 알고나면, 지금 코로나 팬데믹이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그릇된 정보와 편견에서 나온 인포데믹(infodemic)임을 알 수 있다. 인종주의는 식민 정착을 시작한 캐나다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코로나는 그런 점에서 이 땅에 잠재된 인종주의의 위험하고 불편한 측면을 들춰내고 있다.


여러 인권 단체에서 지적하듯이, 값싼 노동을 제공하며  캐나다의 식량주권을 책임지고 있는 중남미 출신의 농촌 이주 노동자들은 코로나 시대에 많게는 20명이 한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감염병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코로나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도 적절히 제공되지 못했다. 결국 열악한 주거환경은 이주노동자의 코로나 폭증으로 이어졌다. 또한 초창기에 농장주들은 코로나에 걸렸지만 증상이 없는 사람들을 계속 힘든 노동을 하게 하기도 했다. 


또한, 캐나다 이주민 구금 센터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게 구금의 한도가 없는 독소규정 때문에 여러 인권 단체에서 비난을 받아왔다. 구금자들은 특별한 죄명 없이 증명서가 없다라는 이유같이 불명확한 유로 구금이 되곤 했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 구금자들은 간수가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는데 구금되어 있었고, 뒤늦게 캐나다 정부가 이들을 신속하게 풀어주었지만, 그 자체가 캐나다 구금 제도의 모순적이고 임의적인 성격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곳에는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하는 불심검문(Racial profiling)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요크 대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유색인종, 특히 흑인과 인도계들이 운전중 단속에 걸려 조사를 받는 비율이 백인의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코로나 시대에 문제가 되었던 일화는 공원에서 흑인 청소년들이 농구를 하다가 적발이 되어서 방역지침 위반으로 많은 벌금을 물게 되었는데, 같은 날 백인 청소년들은 단순한 경고로 끝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인종주의는 더욱 더 은밀하고 생활 깊숙한 곳에서 작동을 한다.


캐나다 정부의 대응과 처벌은 비교적 빠른 편이다. 문제는 정책 너머에 있는 일반 사람들의 편견과 그릇된 정보들이 혐오의 말들과 행동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공론의 장이다. 캐나다는 어느 나라보다 많은 혐오 싸이트들이 있다.  


출처: CTV News


어릴 적부터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여행은 몸으로도 또 내면 깊숙한 곳에서도 삶의 가치를 발견해가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냥 관광을 왔으면 천국과도 같은 이곳이 파고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핏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무리한 동화정책을 폈던 원주민들 문제라면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가르치는 교수들에 대해서 서 그냥그들의 고통을 다시 되팔고 있는 것 같아서 화가 날 때도 있다.


Q: "그 시대에 당신들은 이 모든 사실들을 알고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A: "원주민들이 집회를 하거나 하면 경찰들이 강하게 탄압을 하고..."


Q: "아니오.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당신과 같은 지식인들은 그들이 탄압을 받을 때 무엇을 했습니까?"


하하.. 당연히 학점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나이들어 공부를 하니 잃을 것이 없다. 세상은 좋은 학점을 못따면 낙오할 것이라고 어린 학생들을 복종시킬 테지만 나는 생각해 보니 잃을 것이 없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시대의 가짜뉴스 속에서 , 또한 서구의 프로젝트인  세계화의 무한 경쟁에 내던져진 많은 소시민들의 노동가치의 하락과 실업난을 보며, 그리고 물질만능주의로 다음 세대를 몰아가는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하는 이런 정신적 여행은 때로는 고통스럽다.


.....


이번 달 말부터는 목숨을 걸고 518을 기록한 힌츠페터를 기념하는 힌츠페터상 준비위윈회에 다시 참여할 것 같다. 서양의 문명은 사회계약설이 아닌 인종계약을 바탕으로 한다고 비판하는 밀스(Mills 1999)의 주장처럼, 과정이 모순투성이인 서구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지고 그 가치가 수출되었으면 좋겠다.


http://m.journalist.or.kr/m/m_article.html?no=50356


하지만, 이번 우리나라의 선거를 통해  보게되는 혐오의 말들, 그리고 도덕적 가치의 추락과 공동체의 붕괴를 보면서 참 안타깝고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뛰어난 사람도, 문화도, 경제도 강한 우리나라가 서구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앞으로의 10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세대에는 삼성이나 현대를 자랑하는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뛰어넘는 민주국가라는 세계인들의 인식을 선물해 주고 싶다.


비오는 밴쿠버에서 오늘도 생각이 많다. 오늘도 이렇게  여행중..

작가의 이전글 프랑스 서부의 소도시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