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관계에 대해
캐나다에 처음 와서 낯설고 불편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중의 하나가 커피 한잔 사 먹는데도 점원이 물어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커피 한잔 하면, 그냥 커피 한잔을 살 수 있는데, 이곳에서 커피 한 잔 주문하면, 점원이 3번에 걸쳐 물어보았다. 사이즈, 우유 혹은 프림은 몇 스푼 넣을지, 설탕은 몇 스푼 넣을지. 그리고, 덧붙어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까지 계속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처음에 무척이나 짜증 났다. 그런데, 이곳에서 계속 살다 보니 여기 문화가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기호가 천차만별이라 한국처럼 알아서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분명 동일한 프랜차이즈점의 커피이지만 가게마다 커피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커피는 동일한 기계에서 뽑지만, 넣는 우유와 설탕량은 누가 넣느냐에 따라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런 것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거나 불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단골가게가 정해지고, 그곳에서만 계속 커피를 사 먹게 된다.
또 하나 이상하게 여긴 것은, 이곳에선 '손님이 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손님은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고, 점주나 점원은 만약 그런 서비스를 해 줄 수 없다면 당당히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해 줄 수 있는 서비스의 한계선이 분명히 있고, 그 이상 무리해서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각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있어, 점원은 그 매뉴얼대로만 하면 된다. 점주도 점원에게 매뉴얼 이상의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는다. 어쩌면, 한국과는 다른 개인주의 문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손님도 남들과 다른 서비스를 받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일단 그런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고, 그래서 아주 작은 친절과 서비스에도 감사해한다. 한국과는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소비자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생각해서 서비스를 베풀어야 비로소 제대로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 판매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 판매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배려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곳은 그렇지 않다. 소비자가 먼저 요구해야 한다. 난 이곳이 처음이고, 난 이런 것이 궁금하니 설명해 달라는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판매자의 입장에서 소비자로부터 별도의 요구가 없으니 별도의 서비스는 당연히 하지 않는다. 즉, 소비자가 불편해서 요구사항이 있어야 그것에 대해 반응하고 서비스를 베풀겠다는 태도다.
한국에선 판매자가 이런 사항을 미리 말하지 않았으니 판매자가 잘못이다라는 말이 먹히고, 이곳은 소비자가 이런 사항에 대해 요구하지 않았으니 소비자 잘못이다라는 말이 먹힌다. 더 나아가 요구하지 않는 서비스를 베푸는 것은, 소비자에게 더 많은 금전적 이득을 챙기려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그것을 얻을 수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고, 다른 곳이 없다면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이런 문화가 있기에, 시간이 되면 근무자가 칼같이 문 닫고 퇴근한다. "나는 계약한 시간만큼 일했다. 일을 더 시키려면 돈을 더 주거나 나에게 미리 말하고 나의 동의를 받아라."
이런 식의 문화가, 소비자 위주의 삶을 살다고 온 나 같은 한국인에게, 판매자가 손님에게 매우 성의가 없다는 이미지로 처음에 다가왔다. 하지만, 내가 판매자의 입장이라면,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만 하면 되니까 편하다. 게다가 조금만 신경 써줘도 소비자가 너무 고마워한다. 한국은 고마움의 기대치가 너무 올라가서인지 웬만한 서비스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소비자만이 아니라 판매자로서의 삶도 사는데,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문화는 결국 스스로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