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
단란한 가족이 있다. 아빠가 유명한 운동선수이고, 이번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둬 연봉이 몇 배로 뛰었다. 아빠가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자신이 이번에 돈을 아주 많이 벌었다고 자랑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손을 들고 펄쩍 뛰면서 외쳤다. 그럼, 우리 이제 부자야?라고. 그러자, 아빠가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아니라, 내가 부자야 라고. 이 말이 이민 초기엔 하나의 우개소리로 들렸지만, 오래 살다 보니 이 말이 이곳의 현실임을 깨달았다. 캐나다인은 부모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자녀가 부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물려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18살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 자신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을 진학할 때 나라에서 빌려주는 학자금을 신청하고, 졸업 후 취업하여 오랫동안 조금씩 갚는다. 결혼도 부모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둘이 스스로 준비한다. 성인이 된 이후에 서로의 삶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 부모의 눈엔 아직 어리고 미숙해 보일지라도,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는다. 혹시, 자식이 먼저 도움을 요청한다면 도와줄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부모가 충분히 도움을 줄 능력이 있어도, 도와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그렇다 해도 자녀가 부모를 딱히 원망하지 않는다. 혹시, 부모가 능력이 안되어 도움을 주지 못해도, 자녀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이상,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생각이 맞다. 부모가 부자인 것과 그 자녀가 부자인 것은 엄연히 다르다. 부모가 번 돈은 부모의 돈이지 자녀의 돈이 아니다. 자녀 스스로 번 돈이 자녀의 돈이다. 일단 성인이 되어 스스로 번 돈이 자신의 돈이지, 부모의 재산이 자녀의 재산은 아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순간, 자녀는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고, 독립적인 삶을 살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부모 원망을 할 수도 있다. 부모는 자신이 다른 부모들보다 자식에게 못해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자녀는 자신의 부모가 다른 부모들보다 가난한 것에 대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이런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부모의 집이다. 내가 성인이 되면, 부모의 집을 떠나 나의 집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성인이 되어도 아직 부모의 집에서 살고 있다면, 당연히 집세를 내야 한다. 그리고, 부모 집에 살면서 내가 사용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음식, 전기, 인터넷, 차량 등등에 대해서도 정확히 지불한다. 그것이 당연하고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자신이 부모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고, 냉혹한 사회에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시작점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캐나다인은 겉은 화려하지 않아도 속은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