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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과 도서관

숲 속 도시

by 숲속다리

캐나다로 이민 온 후 나의 기대를 만족시킨 것들 중에 공원과 도서관이 있다. 어디에 살든지 근처에 자그마한 공원이 있고,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다. 여름에는 아이들을 공원에서 뛰놀게 하고, 겨울엔 도서관으로 데려가 책과 컴퓨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삶이 내가 바라던 삶이다. 또한, 도시 곳곳에 나무들도 많았다. 동네 주위를 걷는 것만으로 숲을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집들 속에 나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숲 속에 집들이 놓여있는 느낌이다.


내가 사는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작은 도서관이 있고, 30분 정도 걸으면 커다란 도서관이 있다. 그동안 도서관에 갈 일이 있으면, 주로 운전해서 규모가 큰 도서관에 갔다. 차를 타면 5분 정도 걸렸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집 근처 작은 도서관에 갔다. 추운 겨울에 집에만 박혀 있자니 너무 갑갑해, 운동삼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책을 대출하러 갔다. 오랜만에 와보니, 내부공사를 해서 안이 새롭게 바뀌어 있었다. 더 밝고 넓어 보인다. 무엇보다 큰길 쪽으로 넓고 큰 유리창이 새로 생겨, 확 트인 밖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있다. 흡사 카페의 느낌이다.


음식은 가지고 들어가 먹을 수 없지만, 뚜껑이 있는 음료수는 가지고 들어갈 수 있어,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창가 쪽에 앉아 책을 읽거나, 태블릿이나 랩탑으로 공부나 작업을 할 수 있다. 내가 찾아간 날에도, 중학생정도 보이는 아이들 넷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가져온 음료를 마시며 작은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난 창가 쪽에 앉아 밖을 쳐다보았다. 전날 내린 눈 때문에 세상이 온통 하얗고, 도서관 앞 실외 얼음링크에도 눈이 덮여, 크고 넓은 운동장처럼 보였다. 저 멀리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앙상한 나뭇가지 위엔 하얀 눈이 한여름 무성했던 잎들처럼 소복이 쌓여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서관 오는 길에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사가지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인들이 드문 이곳에도 한국책이 수십 권 있었다. 그중 한 권을 빌려, 차가운 눈바람을 맞으며 집까지 걸어왔다. 폐 속으로 가득히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찬 바람에 코가 얼얼해도, 따뜻한 집안에서 책을 읽을 생각에 행복하다. 나는 지금 실업상태이고, 언제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막막하지만, 추운 겨울에 도서관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여름에 공원에 나가 시원한 나무 그늘아래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상상으로도 난 행복하다. 캐나다에서 어디 살든지, 근처에 크고 작은 공원이 있고,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있고, 집 앞엔 크고 작은 나무가 있고, 도로 옆 줄지어 서있는 푸른 가로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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