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더위

더위가 캐나다에게 미치는 영향

by 숲속다리

이곳에서 사람들끼리 만날 때 보통 날씨 이야기로 스몰톡을 시작하는데, 요즘의 더위를 표현할 때, '크레이지(crazy: 미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캐나다의 여름은,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습도가 낮기 때문에 무더운 느낌은 덜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여름만큼 기온이 올라가는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여름에 대해 이런 표현을 쓰는 이유는, 높은 기온보다 기온의 지속성 때문이다. 하루나 이틀정도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다가도, 다음날엔 30도 이하로 떨어지곤 했는데, 올해엔 30도가 훌쩍 넘는 날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또 계속 지속되니, 미쳤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어제 더웠는데, 오늘도 덥고, 내일도 더울 예정이고, 더 나아가 한 주 내내 30도가 넘는 더위가 지속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하고 점점 심해진다. 과연 이런 미친 더위가 캐나다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우선, 대부분의 집에 에어컨이 필수품이 되었다. 내가 이민 와 처음에 살던 아파트는, 히터는 있었지만 에어컨이 없었다. 캐나다는 겨울이 몹시 길고 춥기 때문에, 히터는 모든 주택과 건물에 필수지만, 그 당시 에어컨이 있는 건물이나 주택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실제로 에어컨을 트는 날을 다 합해도, 1년 중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밖의 날씨가 더워도, 나무그늘이나 집안으로 들어가면, 제법 시원하고 견딜만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새로 짓는 건물이나 주택에 에어컨이 필수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젠 에어컨 없이 여름을 견디는 것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보다 산불이 더 많이 발생한다. 유난히 숲이 많은 앨버타 주에서 연중 한두 번은, 크고 작은 산불이 여름에 늘 발생했다. 그런데, 매년 산불 발생 횟수가 늘어나고, 피해범위도 점점 커진다. 더 나아가, 앨버타 주에서 발생한 시커먼 재가, 바람을 타고 수백 킬로 떨어진 이곳 온타리오 주까지 날아와, 이곳 공기를 오염시킨다. 그래서, 외부운동을 자제하라는 경고의 문구가 빈번하게 뜬다. 중국의 황사가 한국의 하늘을 먼지로 뒤덮듯, 산불로 인해 날아온 시커먼 재들이, 이곳의 공기를 오염시켜, 한여름 외부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더운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나 역시 올여름 유난히 목이 아프다.


마지막으로, 한여름에 웃통을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햇볕 좋은 여름만 되면, 주로 백인들이,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여자들은 비키니 정도의 옷차림으로 일광욕을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일부러 여름에 햇볕을 충분히 쬐어야, 면역성이 높아져서 추운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햇볕에 그을린 갈색피부가 건강함을 상징했지만, 이젠 그런 모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긴 무더위에 일사병이 걸릴 확률이 높고, 강하고 지속적인 햇볕이 오히려 피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한여름에 웃통을 벗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덜 보게 되어 다행이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여름은 살짝 더운 한국의 초가을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푹푹 찌고 햇볕 따가운 한국의 무더위를 연상할 만큼 강하고 독해졌다. 겨울은 덜 춥고, 눈도 덜 내리고, 봄가을은 짧고, 여름은 조금씩 늘어난다. 깨끗하고 따뜻한 여름에서, 따갑고 숨 막히는 여름으로 변하고 있다. 겨울이 덜 추워지는 것은 좋지만, 여름이 점점 매섭고 독해지는 것은 싫다. 예전에는 긴 겨울을 무사히 견디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면, 이젠 여름의 불볕더위를 어떻게 견딜지가 더 걱정이다. 더위에 대한 나의 인내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에어컨이 있는 집 안은 천국이고, 문을 열고 나선 집 밖은 지옥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족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