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예의를 찾아서
캐나다 이민을 오자마자, 한국에서 가져온 운전면허증을 곧바로 캐나다 운전면허증으로 바꿨다. 그 당시 이런 혜택을 주는 나라는 몇 안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이었다. 그렇지 않은 나라의 이민자들은 캐나다 현지인과 똑같은 필기시험과 주행시험을 합격해야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혜택을 받고, 별다른 교육과 적응과정 없이 일단 운전을 시작하다 보니, 캐나다 교통규칙들을 직접 운전을 하며 배웠고, 그래도 잘 모르는 것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했다. 그중에서 나에게 특별히 인상 깊었던 교통규칙은 이것이었다. 동네골목길로 접어들면, 정지 사인이 있는 사거리를 종종 만나는데, 모든 차량이 일단 정지 사인에 정차한 뒤, 먼저 정지한 순서대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신호등이 없어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지한 순서대로 차들이 알아서 빠져나가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서로간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종의 암묵적인 룰처럼 느껴졌고, 한편으로 스스로 알아서 지키는 선진국의 시민의식을 보는 것 같아 놀랐다.
요즘 내가 가장 운전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것들 중 하나가, 골목사거리에서 자신의 순서가 아닌데도 먼저 빠져나가거나, 정지 사인에서 정지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운전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나는 골목사거리 정지 사인에 정지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누가 먼저 왔고 내가 몇 번째인지 세는데,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 때문에 차량 접촉사고가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잘못한 상대방이 내게 경적을 울리거나 이상한 듯이 나를 쳐다보며 지나간다. 심지어 정지 사인 앞에서 속도를 천천히 줄이던 차가, 정지 신호에 서지 않고 그냥 좌회전하는 바람에 직진하던 내 차와 부딪칠 뻔한 적도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예전엔 당연한 상식처럼 예의처럼 지키던 룰이 어느 순간 조금씩 깨지는 것을 볼 때마다, 처음엔 당황하다가 그 다음엔 분노하고 나중엔 아예 포기한다. 나의 소심한 분노는 기껏해야 경적 울리는 정도인데, 그것도 괜한 시비가 붙을까 봐 애써 참는다.
운전 중 스트레스받는 것 중 다른 하나는 대로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전에는 오는 차량과 눈을 맞추면서 미안한 듯 길을 건넜다면, 요즘엔 아예 오는 차들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아주 느릿느릿 걸어간다. 깜짝 놀란 차량이 경적을 울려도 아랑곳없이, 오히려 경적을 울리는 차들에게 화를 낸다. 조금만 걸어가면 횡단보도가 있는데, 왜 굳이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를 위험하게 건너는지 모르겠다. 희한하게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곳엔 늘 교통경찰이 없다. 이런 무단횡단자들의 태도는 정말 상식적이지 않고 예의도 전혀 없다.
굳이 법으로 정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서로 믿고 지키는 규칙들이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없는 캄캄한 한밤중에도, 골목길을 운전하는 모든 차량들이, 정지 사인에서 차를 일단 멈춘후에 출발했다. 내 두눈으로 실제로 아주 여러번 봤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한다. 나의 이곳에서의 운전습관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세상은 법이 아니라, 상식과 예의와 도덕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나는 캐나다에서 배웠다. 이민자들을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던, 겨울왕국 캐나다 사람들이 나에게 행동으로 가르쳐 주었다. 겉보기엔 차갑지만, 원칙과 자부심을 가진 순박하고 따뜻한 수많은 캐나다인에 대한 기억을 나는 잊을 수없다. 그들 덕분에 이 낯선 캐나다에 내가 기꺼이 정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