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나비, 자나방, 깡충거미, 풍뎅이
* 주의: 끝부분에 곤충 근접사진이 있습니다.
나비와 나방의 시메트리
나비와 나방은 서로 비슷한 구석이 상당히 많다. 외형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몇몇 언어권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는 단어조차 없다. 하지만 사람들의 호불호는 명확하게 갈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비를 좋아한다. 나비는 동화나 동요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며 예쁘고 선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반면에 나방은 그리 호감을 얻지 못한 듯하다. 화사한 무늬의 나비가 꽃밭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거리를 두고 감상할 수 있는 서정적인 장면이다. 반면에 나방은 어두운 밤, 불빛에 이끌려 사람들의 공간으로 침투한다. 의도 없는 본능적 행동이지만, 내 영역에 들어온 이상 손익을 적극적으로 따져볼 수밖에 없다.
나도 나비를 좋아한다. 특히 여름철에 볼 수 있는 대형 나비들의 선명한 무늬와 색깔들에 환호한다. 그중에서도 산제비나비의 푸르스름한 빛이나 청띠제비나비의 선명한 푸른 띠는 신비롭고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청띠제비나비의 무늬는 자연에서 흔치 않은 형광빛인데, 퍼시픽림 같은 영화에서 봤음직한 괴수의 색감을 연상시킨다. 거대 괴수에 비해 스케일은 지극히 미약하지만(따지자면 카이주 카테고리 0.0001 정도), 팔랑거리는 이 작은 나비가 흩뿌리는 존재감은 여전히 놀랍다.
나비의 넓은 날개에 아름답게 수놓인 형형색색의 패턴은 보는 이에게 호감을 준다. 하지만 몸통이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기괴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끔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나비들을 잡아서 밖에 날려줄 때가 있다. 이때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데, 기다란 흡수관이나 겹눈이 마냥 친근해 보이지는 않는다. 기운이 빠진 개체들은 손에 올려두고 꿀을 몇 방울 떨궈준다. 그러면 둥글게 말려있던 주둥이 끝이 펴지며 꿀을 더듬기 시작한다. 저 대롱이 내 피부를 뚫지 않을 것임을 알지만, 가까이서 보고 있자면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다.
나방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나방의 무늬는 나비에 비해 수수하다. 동물의 눈알이나 뱀 비늘 같은 정교한 무늬로 의태를 한 것들은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날갯짓을 심하게 하거나 손에 닿으면 우수수 떨어지는 가루도 접근을 꺼리게 만든다. 사실 나비도 비슷하게 비늘이 떨어지지만, 확실히 나방보다는 덜하다. (그래서 이들을 잡을 때는 날개가 망가지지 않게 특히 조심해야 한다) 나방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실명한다는 괴소문이 어릴 적 파다했다. 이런 오해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 아직까지 피하고 싶은 존재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빛에 이끌리는 속성 탓에, 여름밤에 문을 열어두고 작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나방을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을 가까이서 보면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많다. 몸통이 상당히 통통하고, 여느 곤충들과는 달리 다리까지 털로 복슬복슬하게 덮여 있다. 어떤 것들은 거의 포유류 같은 포근한 분위기까지 풍겨서 정감이 간다. 가끔은 쓰다듬어보고 싶을 정도다. (실명의 두려움에 실천하진 않았습니다)
나비와 나방은 각각 커다란 대칭의 날개를 가졌다. 이들 자체가 서로 상호대칭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같은 날갯짓을 하지만, 다른 시간대에서 날아다닌다. 해가 지는 순간을 대칭축으로 접은 데칼코마니이자, 서로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는 도플갱어다.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쁠까? 나비는 나비고 나방은 나방이다. 그저 각자의 세상 속에서 날고 있다.
친구라도 될 수 있다면, 거미
거미는 절지동물에 속하므로 곤충은 아니다. 예로부터 불길하거나 두려움을 주는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어 왔다. 거미줄로 먹이를 꽁꽁 둘러싼 뒤, 천천히 포식하는 모습은 공포에서 비롯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리라. 어릴 적 본 영화에서는 거대화된 거미가 인간들을 끈적이는 줄에 매달아 놓고, 새끼들의 먹이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금 가까이 두고 살아도 좋은 점들이 많다고 느낀다. (나를 먹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는 압도적인 체급 차이가 전제되어 있기는 합니다)
공방의 거미들 중 가장 위협적인 비주얼을 지닌 놈은 농발거미다. 긴 다리들이 쭉쭉 뻗어나가 그 크기부터 대단하다. 여기저기 허물을 벗어두기도 하는데, 빈 껍데기의 포스조차 상당해서 화들짝 놀라기 십상이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의 페이스허거를 연상시키는 외양은 아무리 뜯어봐도 귀여운 구석이 없지만, 굳이 잡거나 쫓아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모기나 다른 곤충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따지자면 유익한 편이다. 집을 짓지 않는 배회성 거미라서 거미줄을 제거하느라 성가실 일도 없다. 다행히 경계심이 많은 모양이라 조금만 다가가도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에 (때로는 이게 더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동거가 딱히 불편하지는 않다.
다른 거미들도 있다. 늑대거미는 이름도 그렇고 상당히 멋있는 외모를 가졌다. 여덟 개의 다리가 대칭으로 모양이 잘 잡혀 있어 단정한 느낌을 준다. 다른 곤충을 사냥하는 장면을 드물게 보여주기도 한다. 이 외에 거미줄을 치는 종류도 많다. 나는 어지간한 거미집은 그냥 두거나, 실수로 망가뜨리면 최대한 수리를 해 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기계 근처에 친 거미줄들만은 부지런히 제거하고 다닐 수밖에 없으므로, 가급적 실외에 집을 지으라고 설득할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
간혹 깡충거미 종류가 나오기도 한다. 이름 그대로 깡충거리며 튀어나오는 모습이 깜찍하기 그지없다. 작은 개체들은 손에 올리고 핸들링을 시도하는데도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대중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8개의 눈이 달려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까맣고 둥근 눈알들이 거울처럼 빛난다. 이 많은 거미의 눈에는 공방 안의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진다.
단단하게 반짝이는 풍뎅이들
여름밤 작업을 하다 보면 어디선가 계속 퉁퉁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불빛을 보고 날아든 풍뎅이들이 조명이나 천장에 충돌하는 소리다. 딱딱한 외피로 덮인 이 갑충들은 상당히 단정한 외모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특히 어린 남자아이들은 풍뎅이 종류를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게 커서 된 게 나다) 여느 곤충들처럼 물컹하거나 털이 많지 않다는 점이 비호감 요소를 상당히 줄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덩치도 크고, 상대적으로 온순하다. 등 뒤에서 집으면 서로 피해를 입지 않고 안정적으로 들어 올릴 수 있다. 딱딱한 겉날개를 먼저 열어젖히고, 부우웅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는 모습은 공학적인 매력까지 보여준다.
이들 대부분은 반짝이는 초록색 껍질로 덮인 풍이들이다. 풍이는 대체로 겁이 없다. 집어 들면 벗어나려고 계속 발버둥 치는데, 힘이 꽤나 강하다. 풀숲 방향으로 멀리 던지면 땅에 닿기 전에 날아서 제 갈 길을 간다. 제주도에만 분포하는 고유종인 제주풍뎅이도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몸집은 작고 광택이 있는데, 오렌지색의 날개와 청록색 가슴 부분의 배색이 깜찍하게 어우러진다. 겁이 많은 편이라 옆에서 조금만 소리를 내면 움츠러들어서 꼼짝 않는다. 보호종인 애기뿔쇠똥구리나 두점박이사슴벌레가 들어오면 조심스럽게 거둬서 밖에 놓아준다.
풍뎅이류 중 가장 인기 있는 종은 단연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다. 까맣게 빛나는 단정한 외골격과, 멋들어진 뿔을 갖춘 거대 갑충은 나의 이상형이기도 하다. 이 외양은 (특히 어린) 사람들에게 상당한 호감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면접이나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 정장을 갖춰 입는 이유가 이런 거다. 튼튼한 외골격과 관절 부위는 정밀하게 만들어진 기계장치 같기도 하다. 집 앞에서 개를 산책시킬 때, 아스팔트 위에서 기어 다니는 놈들을 주울 때도 종종 있다. 그러면 하루 정도는 집에 데려와서 이것저것 먹인 뒤 돌려보내곤 한다. 주로 과일 따위를 다져 주는데, 멀쑥하게 차려입은 녀석들이 체면 차리지 않고 들러붙어 찹찹거리는 모습이 참 흐뭇하다. (실제로 찹찹 소리가 나지는 않습니다) 딱딱한 외피와 다리가 그릇에 부딪쳐 덜컥거리는 와중에 혓바닥같이 생긴 섭식구가 주둥이에서 연신 튀어나와 과즙을 흡수한다.
이 작고 단단한 곤충들이 불빛이나 먹이를 좇는 본능에 착하고 나쁜 성질은 찾아보려야 찾을 수없다. 다음날이 되면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공방 가는 경로에 있는 오름에 들러 이놈을 올려놓고(그늘진 참나무가 적합하다), 잠시 중단됐던 서로의 갈 길을 마저 간다. 나비도, 나방도, 거미도, 풍뎅이도, 나도 각자의 층위 속에서 날고 기어가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을 이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