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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덕호 Oct 01. 2024

스산한 밤의 소리들

호랑지빠귀, 소쩍새, 검은등뻐꾸기

* 주의: 끝부분에 곤충 근접사진이 있습니다.




밤의 목공방


나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잦다. 낮에 부지런히 늘어놓은 게으름을 주섬주섬 거둬들일 수 있는 기회는 해가 지고 나서야 주어진다. 밖이 어둡고 조용할수록 좋다. 외부에 대한 감각이 제한되면 내 앞의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밤의 작업실은 죽은 듯 고요하다. 낮의 소음들이 내려앉은 밤에는 나무를 깎거나 망치질하는 소리가 공방 전체에 균일하게 퍼진다. 작업실은 시끄러운 소리가 문제 되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있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는 가급적 기계작업을 피한다. 날카로운 기계의 소음이 기껏 가라앉은 분위기를 질서 없이 휘젓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천장이 높은 이 공방에서는 기계가 멈춘 후에도 금속성의 이명이 오래 머무른다.


이 적막 속에서 혼자 작업을 하다 보면 순간순간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 공방 주변에는 민가라고 해봤자 사람 기척이 거의 나지 않는 주택 몇 개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이 건물에만 불이 밝혀져 있을 것이다. 밤이 어두울 때, 여기에 이끌리는 것은 빛에 몰려드는 곤충들만이 아닐 수도 있다. 


기분 탓인지 한창 작업에 열중하다 보면 왠지 모를 기척이 느껴진다. 공방 구석이나 창문 밖에서 누군가 (또는 무언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바깥은 불빛 하나 없이 어두워 안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심령현상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지만, 귀신이라거나 하는 얘기를 꺼내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소리다. 


때때로 입구의 센서등이 절로 켜지거나, (바라건대, 나방 때문입니다)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노루입니다)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풀벌레들의 세찬 울음소리가 까닭 없이 뚝 그치는 순간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몹쓸 상상력은 너무나 위대하다. 늦여름, 희미한 불티처럼 풀숲 위를 나뒹구는 반딧불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나뭇가지 사이 멀건 얼굴이 떠다니기도 하고, 수풀 속에 누군가 서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도 한다. 이따금 작업을 끝내고 불 꺼진 공방 문을 닫을 때면 누군가 저 안에서 잠깐, 이라고 짧게 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소리, 소리, 소리


이곳에서 나는 작업을 계속한다. 겁이 많은 편이지만, 밤늦게 작업실에 머무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역시 생업의 현실은 상상이 만들어낸 두려움을 상회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지극히 공포스러운 일이다) 누가 봐도 귀신 들린 집에 구태여 온 가족을 이끌고 들어가 위기를 자초하는 외국 공포영화의 주인공들을 많이 보았다. 


작업실 일부 공간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일이 한창 밀려있을 때는 거기서 홀로 숙식을 해결하며 며칠이고 작업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철골조 샌드위치 패널 건물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밤이면 여러 가지 생소한 소리가 들린다. 벽면을 이루는 이 패널은 두꺼운 단열용 스티로폼을 금속판이 덮고 있는 형태이다. 그렇게 두껍지 않은 철판이므로 겉면에 뭔가가 조금만 스치거나 부딪쳐도 깡통 같은 소리가 난다. 이를테면 까치가 지붕 위에서 통통거리며 돌아다니면, 발톱이 까스락거리는 소리를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나뭇가지가 벽면에 부딪치는 소리가 잦아들지 않는다. 길게 늘어진 전깃줄이 외벽을 반복해서 쓸어내리기도 한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내가 애써 정체를 확인한 소리들이다. 


어느 날엔 손바닥으로 외벽을 빠르게 네다섯 번씩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은 나무도, 전깃줄도 없는 곳이다. 지붕 위에 올라갈법한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 소리라고 하기에는 둔탁하고, 간헐적으로 발생한다. 밤의 적막 사이로 순간순간 비집고 들어오는 이런 소리들은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둠 속에서 우는 새들


밤에 들을 수 있는 새소리들은 그 와중에 마음에 위안을 준다. 나는 작업을 할 때면 주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는데, 여름밤의 새소리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에는 스피커를 끄고 거기에만 집중한다.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 귀한 순간이다. 밤에 활동하는 새들은 육안으로 관찰하기가 쉽지 않지만, (다짜고짜 랜턴을 비추면 큰 실례가 된다) 특징적인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동정 가능하다. 확실히 내가 정체를 알고 있는 안전한 존재가 저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은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캄캄한 밤에 소쩍새, 검은등뻐꾸기, 쏙독새, 산비둘기 등의 소리가 하나둘씩 겹쳐 쌓이기 시작하면, 이내 공간 전체가 입체감 가득한 청음실이 된다. 가만히 서 있으면 방향성도 없이 전방위에서 울리는 소리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순간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있는데, 그 가운데 의아한 소리가 간혹 섞여 들어오는 것이다. 어느 날에는 옅은 흐느낌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가느다랗게 힘이 빠져가는 쇳소리 같기도 하다. 철판에 손톱을 세워 가늘고 길게 긁는 소리이거나, 오래된 문짝이나 기계가 삐걱대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뭐가 됐든 그 소리는 내 몸에 있는 모든 털이나 뼈 따위의 위치를 하나하나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 


(그나마 가장 덜 무섭게 느껴지는) 높고 긴 휘파람소리라고 표현을 정리하겠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파악해보려 해도 방향을 알 수 없다. 비어있는 옆 창고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공방 앞의 대나무숲에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번 들리기 시작하면 이게 실제로 어디선가 나는 소리인지, 뇌리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어떨 때는 바로 뒤에서 들리는 것처럼 가깝다. 어두운 구석에서 나는 소리같기도 한데, 뭔가가 웅크린 채 흐느끼는 중일까 봐 랜턴을 비추지 못한다. 거기 누구 있냐고 물어볼까 싶다가도 혹시 대답이 돌아올까 두려워 질문을 삼킨다. 


이것이 호랑지빠귀 소리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이럴 때는 귀신새라고도 불리는 호랑지빠귀의 별명도 불길하기보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 내가 들은 소리는 귀신이 아니고 새 울음소리다. 그런데 그렇다고 넘어가기엔 너무 (표준화된) 귀신 소리 같은데? 누가 들어도 귀신 소리 같으니 귀신새라고 하는 거겠지. 


밤은 제한된 감각만으로 판단하라고 종용한다. 일부가 차단되면, 대신 나머지 감각들이 살아난다. 작업실을 몇 걸음만 벗어나도 눈은 어두워진다. 반면에 작은 소리도 선명하게 들린다. 지금 내 귓가에 대고 흐느끼는 저 소리는 분명 호랑지빠귀 울음이다. 아니면 안 된다. 




밖은 어둡다. 미약하게 어둠을 밝히는 달과 반딧불
밤에 만나는 땅강아지, 청솔귀뚜라미, 베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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