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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n 23. 2023

해명

 학기 초만 되면 담임교사는 부모님 직업을 대놓고 조사했다. 그래서 내가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목사와 목수를 헷갈리는  명을 제외하면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호기심이 대부분이었지만 종교문제가 이슈로 떠오를 때면 질문공세를 받기도 했다. 90년대의 한국은 종말론과 사이비가 기승을 부렸다. 뉴스와 다큐멘터리에서 보도한 이단교회의 모습은 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교회를 다녀도  번씩 종교문제로 떠들썩해지면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무척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신앙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고 교리에 대해서 생각해  적도 없는 시기였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는 초등학생이 이단에 관해 설명하는 상황. 도움을 받을  없는 답답한 현실 속에서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90년대의 아이들은 순진했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는 말을  잘하고 화내지 않는 쪽이 이겼다. 나는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었고 또래보다 조숙했다. 곤란한 질문이나 기분 나쁜 조롱에 대해서 차분하게 대응했다. 정확하게는  친구들 눈에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이비로 인해 사회 자주 시끄러웠지만 내게 불똥이 튀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그럴 때마다 매번 긴장했었다.


 부모나 집안의 종교관은 아이들의 정서와 성장에  영향을 준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교회는 집과 똑같은 공간이었다. 기독교 문화 내게 상식과 같았다. 나는 철이 들기도 전에 종교색에 물들어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짙은 종교적 색채는 낯선 것이 당연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 아저씨  명이  있었다.  아저씨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복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퀭한 눈과 비쩍 마른 몸에 덥수룩한 수염은 누가 봐도 이상해 보였다. 구원 대한 일장연설을 이해할 초등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기독교인에 대한 이미지를 박살 내기 좋은 광경이었다.


  아저씨는 자기 딸도  학교를 다닌다면서 세상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말을 매일 반복했다. 아이들은  이상한 아저씨의 딸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랑 같은 학년의 여자애 하나가 따돌림을 당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신체적 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다르다는 이유로 발생하는 정서적인 폭력이다. 어린아이들에게 다른 점은 이해가 아니라 차별의 근거로 작용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게 익숙한 것들누군가에게는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학부모들의 신고와 학교 측의 제지로  아저씨는 모습을 감췄다.  여자애도 전학을 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아이도 나처럼  구들에게 해명을 했을까 아니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포기한  지냈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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