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by 김태민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지루한 전반기를 보내고 찾아온 공휴일과 휴가철은 찰나와 같이 빠르게 지나간다. 34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잠 못 들게 만드는 열대야를 버티다 보면 8월이 끝난다. 허울뿐인 처서가 지나고 달력이 9월로 넘어가야 비로소 더위가 한풀 꺾인다. 백로를 지나 벌써 9월도 중순을 넘겼지만 여전히 땡볕이 쏟아지는 한낮은 여름이나 마찬가지다. 가을다운 가을이 오려면 한참 멀었다. 기후변화 때문에 한국은 사실상 두 번의 장마를 겪는다. 8월 말부터 벌써 2주간 비가 오고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해가 지면 습도가 빠르게 올라간다. 청량하고 시원한 초가을의 풍경은 사라져 버렸다.


지난 몇 년간 겨울마다 며칠씩 비가 내렸다. 4월부터 9월까지는 사실상 여름이다. 가을의 존재감은 희미해졌고 아침저녁에만 가을날씨를 느낄 수 있다. 옷장 속의 옷들 역시 구성이 단순해졌다. 여름 내내 입는 리넨셔츠와 겨울용 경량패딩만 늘었다. 봄가을에 즐겨 입었던 왁스재킷이나 라이더 재킷은 이미 다 처분해 버렸다. 변하는 기후에 맞게 생활방식도 점점 달라지는 중이다. 물론 변함없이 여전히 그대로인 것도 있다. 바로 인간의 생체시계다. 8월에는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 상반기의 반환점이자 후반기의 시작인 6월부터 여름이기 때문이다. 더위가 계속되기 때문에 8월도 6월의 연장선 안에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다 9월이 되면 인간의 생체시계는 변화를 인지한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몸으로 감지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계절이 달라졌다는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도 9월부터다. 어느새 매미소리는 사라졌다. 밤늦게까지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끊임없이 이어진다. 여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비들의 왈츠가 끝나면 잠자리들의 비행이 시작된다. 새하얀 구름은 물러가고 시야 끝까지 파란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있다. 여전히 한낮의 햇살은 뜨겁지만 저녁 무렵이 되면 선선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더위를 피해 떠나고 싶었던 한여름과 다르게 소중한 사람들과 분위기 있는 밤을 보내고 싶어 진다. 명절을 보내고 나면 연말이라는 단어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달력의 자릿수가 하나에서 둘이 되는 시점부터 가슴속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9월은 그런 점에서 실질적인 분기점이다.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는 9월은 한 해의 점이지대 같은 느낌이 든다.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는 달이다. 적응에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계절이 섞이는 환절기가 되면 사람도 내면의 변화를 맞이한다. 가끔씩 아무 생각 없이 파란 하늘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연말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새로운 것들을 기대하다 보면 금세 사라진다. 연초도 바쁘게 흘러가는 점에서 비슷하다. 가을이 겨울로 넘어가는 지점 역시 마찬가지다. 연말 분위기에 취하거나 쫓기기 시작하면 시간을 잊고 지내게 된다. 그래서 9월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음속을 차분하게 살펴보는 때인 것 같다. 지나간 것들을 세면서 다가올 날들을 가늠해 보는 시간. 9월은 그런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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