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이 맛있는 계절

by 김태민

환절기가 되면서 컵라면을 자주 먹고 있다. 글을 쓰다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저녁 메뉴로 선택할 때도 있다. 일교차가 큰 폭으로 벌어지면 라면 먹기 딱 좋은 날씨가 된다. 환절기가 되면 유난히 라면이 맛있게 느껴진다. 한낮은 여전히 덥지만 해가 지면 선선해진다. 수분기를 머금은 신선한 공기를 느끼면서 먹는 음식은 정말 맛있다. 지은 지 30년도 넘은 오래된 연립주택이지만 우리 집은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옥상이다. 따뜻한 차나 컵라면을 나는 옥상에서 즐긴다.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 놓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3분이면 완성되는 컵라면은 느긋하게 먹을 때 제일 맛있다. 심리적인 여유는 맛을 배가시키는 최고의 조미료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시간에 쫓기면서 긴장한 채로 먹는다면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편안한 곳에서 걱정 없이 즐기는 식사는 메뉴에 상관없이 큰 만족과 행복을 준다. 삼각김밥을 먹어도 즐겁고 인스턴트커피를 마셔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래서 옥상에서 먹는 컵라면은 늘 맛있다. 고개를 돌리면 산이 보이고 그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컵라면을 먹는다. 그러다 보면 캠핑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행복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목적지가 아니다. 눈높이를 낮추면 언제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기쁨을 찾아내는 태도가 삶의 행복을 결정한다. 행복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다.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다.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행복의 핵심이다. 천 원짜리 컵라면을 먹으면서 느끼는 소소한 여유도 행복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소한 것들을 통해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글쓰기의 본질은 기록이다. 일상의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글로 적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을 복기하는 습관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그 속에 깃든 작은 기쁨을 만나게 된다.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멋지고 화려한 것들을 동경했던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발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람의 마음도 계절처럼 변한다. 관점이나 취향은 확고해 보이지만 입맛처럼 쉽게 달라질 수 도 있다. 세상에는 법칙보다 예외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명확해 보였던 경계선들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흑과 백의 선명한 구분선은 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과 아군을 나누다 보면 결국 인간은 고립될 뿐이다. 고집을 버리고 아집에서 벗어난다.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일상의 기쁨을 찾아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여름이 떠났다. 이제 6시만 넘어가도 해가 저물고 저녁이 찾아온다. 창문을 열고 가을을 맞이한다. 얼굴에 닿은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가을이 왔다. 짧아서 아쉽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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