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어보니 하늘은 옅은 회색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아침공기는 평소보다 더 상쾌한 느낌이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이파리마다 유리알 같은 빗방울이 달려있었다. 여름은 소나기를 몰고 달려오지만 가을은 세상을 물들이며 천천히 다가온다. 일교차 큰 날씨가 이어지더니 어느새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아침마다 산책을 한다. 한참 걷다 떡갈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쉬다 보면 톡톡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도토리 몇 개를 주웠다. 하천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돌다리를 건너다본 새하얀 윤슬은 햇살을 받아 춤을 추는 것처럼 일렁였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면 흐르는 물이 맑아진다. 하늘도 투명한 푸른빛을 띤다. 맑은 물 위로 떠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눈이 시리다. 가만히 앉아서 그 모습을 보다 보면 근심이나 걱정이 모두 사라진다. 가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그래서 의미는 더 각별해졌다. 가을비가 몇 번 내리고 나면 어느새 두꺼운 코트를 꺼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얼마 되지 않는 가을날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온 세상이 가을에 물드는 10월이다. 은행나무잎은 반절 넘게 노란색으로 변했다. 옥상에서 보이는 수리산 관모봉 주변은 벌써 울긋불긋 해졌다.
여름처럼 더웠던 추석도 지났고 10월 초의 징검다리 연휴까지 끝났다.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시기다. 아직 한낮의 햇살은 제법 따갑지만 그늘 아래만 들어가도 금세 서늘해진다. 나뭇잎이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졌다. 여름 내내 입던 리넨셔츠를 잘 개서 옷장에 넣었다. 외출할 때는 얇은 카디건과 후드를 꺼내 입었다. 아직 맥코트를 입을 만한 날씨는 아니지만 이 주만 더 지나면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그쳤다. 창 밖의 거리 위로 햇살이 내려오고 있다.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투명해 보였다. 비와 구름이 만든 커튼을 걷으면 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영원할 것처럼 이어지던 폭염도 끝나고 거센 비바람을 몰고 왔던 태풍도 지나갔다. 기후는 지속되지만 날씨는 일시적일 뿐이다. 악천후는 잠깐이다. 계절을 거스를 수는 없다. 비는 그치고 바람은 멎는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반복된다. 예상을 빗나갈 때도 있고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때도 있지만 법칙을 거스르는 경우는 없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졌지만 여전히 가을은 가을이다. 하늘도 산도 사람도 새로운 빛으로 물드는 계절이다. 일희일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날을 만끽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감사함을 느낀다. 시간 날 때마다 밖으로 나와서 걷는다. 그때마다 가을이 여기저기에 뿌려둔 작은 행복을 발견한다. 도토리를 줍는 것처럼 매번 사소한 기쁨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