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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Oct 30. 2023

차가운 계절의 바버재킷

 일교차가 큰 가을이다. 한낮은 덥고 아침저녁은 바람이 차다. 한 번씩 비가 내리고 나면 입김이 나올 만큼 추워진다. 급변하는 날씨 때문에 옷 입기 참 애매한 계절이다. 한창 멋 부리기에 빠져있던 시절의 나는 가을만 되면 바버재킷을 즐겨 입었다. 화이트나 스카이블루 컬러의 버튼다운 셔츠에 얇은 니트 타이를 매고 그 위에 왁스재킷을 걸쳤다. 치노팬츠나 셀비지 데님과 궁합이 좋아서 자주 입었다. 바버는 트렌치나 맥코트보다 가을의 분위기를 더 잘 살려주는 아이템이다. 톤다운 된 중후한 색감이나 코듀로이를 덧댄 옷깃과 소매, 브라스 재질의 묵직한 단추까지. 재킷이 품고 있는 클래식한 무드는 추운 계절에 최적화된 느낌이다.


 바버 재킷이 품고 있는 매력은 투박함이다.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뽐내는 필슨 가방처럼 바버도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다. 세련된 디자인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보다 투박한 이미지에서 풍기는 편안함이 더 매력적이다. 옷 입기는 반복이다. 화려함을 쫓다 보면 어느새 편하고 흔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세련된 랄프로렌의 스타일을 좋아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우중충해 보였던 바버재킷이 예뻐 보이는 순간이 온다. 급변하는 가을날씨보다 더 변덕스러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물론 유행의 영향도 적지 않다. 2010년대 초만 해도 왁스재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적은 편이었다. 어느 순간 유행을 타고 너도 나도 입는 옷이 된 점이 참 신기하다.


 가을마다 즐겨 입었던 바버재킷을 작년에 모두 처분했다. 옷이 주는 클래식한 무드가 자아내는 이미지는 멋지지만 바버는 입기 불편한 옷이었다. 일단 옷이 무겁다. 지갑은 무거울수록 좋고 옷은 가벼울수록 좋다. 피로감을 주는 옷은 입다 보면 언젠가 손이 가지 않는 때가 온다. 왁스재킷은 관리하기 어려운 편이다. 왁스 코팅된 옷감에 먼지가 들러붙는 데다 전반적으로 오염에 취약한 옷이다. 빨래나 드라이클리닝을  수도 어서 난감했다. 입으면  멋지지만 여러모로 불편한 옷이다 보니 입지 않게   같다. 옷은 결국 편안함이 제일 중요하다. 나이가 들어서 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매년 가을이 되면 SPA나 도메스틱 브랜드에서 바버 st 느낌으로 필드재킷이 출시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더플코트나 라쿤퍼야상처럼 전 국민의 교복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투박한 옷일수록 옷의 맵시 있게 입으려면 상당한 센스가 필요하다. 바버는 스타일링의 난이도가 제법 높은 옷이다. 계절템으로 지위가 격상된 것은 사실이나 국민템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추운 계절이 되면 어딜 가든 바버재킷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드는 가을의 단풍처럼 옷차림 역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연말이 주는 계절감을 느끼게 된다. 한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가지고 있던 바버 재킷은 모두 처분했지만 사람들이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입을 만큼 바버는 매력적인 옷이다. 날이 추워지면 좋아하는 가을옷을 빨리 꺼내 입고 싶은 기분이 든다.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계절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기분. 예쁜 재킷을 꺼내 입고 싶어서 늦가을을 기다리는 마음. 그런 설렘과 기대를 안고 사는 것도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가을비가 몇 번 내리고 나면 금세 초겨울이 찾아올 것 같다. 재킷 입기 정말 좋은 날씨다. 짧아서 더 아름다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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