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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07. 2023

남보다 못한 사이

가까울수록 더 상처받는 가족관계

 탄성이 강한 고무줄도 계속해서 잡아당기면 언젠가는 끊어진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 지속적인

자극이 누적되면 상처는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내면에 상처를 남기는 가장 큰 원인은 말이다. 공격적인 어조와 비아냥, 인신공격과 비난 같은 것들은 기분과 마음을 모두 상하게 만든다. 심한 말은 상처가 되고 선을 한 번 넘어온 막말은 털어내기도 쉽지 않다. 주고받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 세상에는 상식을 모르는 인간들이 상상이상으로 많다. 무엇보다 제일 큰 상처를 남기는 말은 남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주고받는 말이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은 서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적당히 잊어버리고 가능하면 흘려보내야 할 것들까지 세밀하게 기억한다.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것들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다. 사람의 감정은 날씨와 같아서 언제든지 급변할 수 있다. 가까운 관계라도 감정이 상할 정도로 싸울 수도 있고 오래 본 사이라도 사소한 다툼으로 소원해질 수 있다. 서로의 감정이 충돌할 때 머릿속에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상대방의 흠이다. 오래 알고 지내서 정말 가까운 사이라서 잘 아는 치부를 말로 찌른다. 그 순간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든다. 서로의 흠결을 붙잡고 덮어뒀던 문제를 꺼내서 면전에 던져버린다. 소중한 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한바탕 난타전을 벌이고 나면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남에게 친절한 이유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해 모르면 꺼낼 말이 없다.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평가하거나 지적할 수도 없다. 가까운 사이는 오래 지내면서 약점과 단점도 알게 된다. 특히 가족은 너무 많은 것을 공유하다 보니 말로 서로를 상처 입히기 쉽다. 오래 사귄 친구와 지인은 감정싸움을 벌인다고 해도 나름의 안전선이 존재한다. 심한 말이 오고 가도 끝까지 넘지 않는 경계선이 있다. 하지만 가족은 다르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말이 인내심의 끈을 끊어버린다. 인간 내면에는 분노의 그릇이 있다. 오랫동안 쌓인 분노의 감정은 수위가 가득 차더라도 갑자기 쏟아지지 않는다. 그 아슬아슬한 표면장력을 깨는 한 방울은 한 마디의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둑이 무너진다.


 오랜 시간 축적된 분노의 감정은 티가 나지 않는다. 참고 가라앉히면서 넘어가다 보니 분노는 압축되어 증오가 된다. 가족이라도 해도 소용없다. 오히려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되는 배신감은 증오를 더 크게 증폭시킨다. 그래서 쌓일 대로 쌓인 감정이 터져 나올 때의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처음 보는 모습에 가족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살면서 거의 평생 동안 누적된 감정인만큼 주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타일러도 소용없고 용서를 빌어도 의미가 없다. 둑의 밑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물은 계속에서 흘러나온다. 결국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극심한 상처를 남긴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만능이 아니다. 가족이니까 괜찮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혈연은 많은 것들을 납득하게 만드는 사회적인 마법이다. 그러나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가족이라는 관계 이전에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존중받고 인정받지 못하면 가족이 내세우는 우리라는 이름은 갑갑한 우리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쌓인다. 재앙의 전조는 여기저기에 나타나지만 가족구성원들은 별생각 없이 여기고 넘어간다. 오히려 핀잔을 늘어놓으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가족 안에서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돌을 던진 사람은 잊어도 맞은 사람은 잊을 수 없다. 남이라면 싸우겠지만 가족이니까 넘어간다. 그런 마음들이 축적되면서 파국으로 가는 긴장을 만들어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집안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을까?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인간관계다. 피를 나눈 사이가 주는 무게감은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없다. 하지만 서로를 너무 가까운 관계라 내면의 상처와 모난 부분까지  알고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맞으나 가족에게 맞으나 아픈 것은 똑같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이므로 통증과 더불어 비참한 배신감까지 느껴질 것이다. 인간관계는 많은 노력을 통해서 유지된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말을 조심하고 신경 쓰는 것보다 좋은 배려는 없다.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것보다 싫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호감과 호의만으로도 좋은 행동을   있다. 오직 사랑만이 싫어하는 행동을 고치는 동기가 된다. 가족을 사랑한다면 정말 소중한 존재라면 말로 아껴주고 말로 안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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