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눈이 내린다. 창문 밖으로 하얀 눈발이 보인다. 올해 첫눈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함박눈이다. 가루눈이 날리는가 싶더니 이내 목화솜처럼 폭신해 보이는 눈송이가 보였다. 잔잔한 바람을 타고 눈은 왈츠를 추면서 우아하게 내려온다. 부엌에서 핫초코를 한 잔 타서 천천히 마시면서 눈을 구경한다. 이제 진짜 겨울이 왔다. 제대로 된 첫눈을 봐야 정말 겨울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비도 좋고 눈도 좋지만 둘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겨울비는 차갑고 외롭다. 그러나 눈은 차갑지만 포근한 느낌이 든다. 질감에서 오는 차이가 제법 큰 편이다.
무엇보다 초겨울의 첫눈은 연말 분위기를 생각나게 만든다. 한 해가 끝나갈 무렵에 느끼는 감정은 감사함이다. 무탈하게 별 일 없이 또다시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잃어버린 것을 세기 보다 남아 있는 것들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겨울은 추운 날씨와 별개로 작은 행복을 자주 체감하게 되는 계절이다. 따뜻한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혹한을 뚫고 만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갖고 있는 것들을 통해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추운 겨울이 되면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늘 그렇듯 시간은 참 빠르다. 아름다운 가을이 이어지나 싶더니 벌써 겨울이다. 새파란 하늘은 점점 투명한 색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겨울 하늘은 희고 투명하다. 가끔씩 회색빛 구름이 눈발을 뿌릴 때도 있지만 겨울 내내 하늘은 맑다. 아직 노란 물들지 않은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지만 이미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었다. 가을은 작별인사도 없이 저만치 멀어져 버렸다.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가 싶더니 겨울이 찾아왔다. 11월도 벌써 반 넘게 지나갔다. 4시만 넘어가도 해가 산너머로 기운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눈이 그치고 바람도 멎었다.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가을이 건네는 선명한 빛깔의 마지막 인사였다. 글을 쓰고 나서 코트를 가까운 세탁소에 맡겨야겠다. 언젠가부터 첫눈을 보면 설렘 대신에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 세월이 흘러 노년의 나이가 되면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내리는 첫눈을 보면서 글을 쓰던 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때는 어떤 감정과 기분으로 오늘을 추억하게 될까. 시간은 착실히 흐른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간다. 그러나 추억은 언제든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첫눈 오는 날 만든 기억 속의 소중한 순간들이 한 장면씩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