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Nov 26. 2023

불면증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불면증

 오후 다섯 시만 되면 하늘이 어두워진다. 겨울이 되면서 밤이 길어졌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겨울밤은 유난히 길고 괴롭다. 불면증 때문에 수면유도제를 복용 중이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몸이 피곤하거나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 수면의 질은 급격하게 하락한다. 걱정이나 불안에 시달리면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밤새도록 잠을 설치면 아침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유 없는 불면증은 없다. 잠이 오지 않는 명확한 원인이 있다.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친구는 최근에 작은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규모는 작지만 사업을 따내고 회사를 운영하는 일은 전부 대표인 친구의 몫이다.


 성장 가능성과 역량을 알아보고 좋은 투자제안이 들어왔지만 부담감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직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과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걱정과 불안을 불러왔다.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졌고 수면유도제를 먹는 밤은 늘어났다. 약이 떨어지는 날에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수면장애로 인해 몸은 괴롭지만 추가로 사업을 제안받으면서 사업은 순항 중이다. 그러나 불면증도 지속 중이다. 철두철미하고 꼼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세심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일수록 수면장애나 불면증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불안이다. 한 가지 일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게 되면 걱정과 불안이 몇 배로 늘어난다. 낮에는 괜찮다. 그러나 잠자리에 누워서 혼자가 되면 불안이 몰려온다. 어둠 속에서 형형한 눈동자를 달고 있는 이리처럼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든다. 맹수에게 목을 물어뜯기는 나약한 초식동물처럼 불안에 잠식당한 사람은 생기를 잃는다. 잠들지 못하면 계속해서 걱정과 불안에게 유린당할 수밖에 없다. 잠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보약이다.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 중 하나만 불편해도 생활은 생지옥이 된다.  


 잠드는 순간 그리고 화장실에 가는 순간의 인간은 철저하게 혼자다. 가장 고독한 순간에 해일처럼 밀려오는 고통은 삶의 질을 급격하게 떨어뜨린다.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고통은 벗어날 수 없는 형벌이나 마찬가지다. 변비에 시달려 본 적은 없지만 불면 못지않은 괴로움이라고 확신한다. 섭식장애나 위장장애 역시 고통의 정도는 다르지 않다. 편안하게 뱃속을 채우고 깨끗하게 속을 비우고 아무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인생은 정말 완벽한 인생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사람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권력으로도 손에 넣을 수 없는 완벽한 행복을 쟁취한 삶이다.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걱정과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한 번 사로잡힌 상념을 떨쳐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덫에 걸린 사슴처럼 이리저리 날뛰어보지만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불면의 그늘은 시간이 지나면 늪처럼 사람을 집어삼킨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홀로 속절없는 기다림을 이어나가는 기분은 절망적이다. 구원이나 다름없는 숙면은 찾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별이 없다. 한밤을 넘겨 새벽녘이 되면 체력은 한계에 도달한다. 몸은 누워있지만 마음이 지쳐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 그렇게 쇠약해진 틈을 노리고 파고드는 불안은 막을 수 없다.


 불면증은 출구 없는 미로다. 아무리 둘러봐도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다. 원인을 생각하다 밤을 새우고 이유를 찾다 새벽을 맞이한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속수무책이다. 힌트 하나 없는 기분 나쁜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시간이 지나면 밤이 무섭게 느껴진다. 잠들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을 때 밀려오는 무력감에 진이 빠진다. 몸이 아픈 것도 힘들지만 정신이 괴로운 것은 다른 차원의 고통을 준다. 불면수면장애는 일상생활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집중력과 판단력이 흐려지는가 하면 심한 감정기복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없던 걱정도 생기고 불안도 점점 심해진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이 추구하는 가장 원초적인 목적은 구원이 아니다. 걱정과 불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통틀어 걱정과 불안을 완벽하게 떨쳐내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은 없다. 불안과 걱정이 만들어내는 고통은 밤마다 가슴을 짓누른다. 생각을 멈춘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독하게 마음먹는다고 불안이 가시는 것도 아니다. 불면의 늪에 빠지면 무슨 수를 써도 잠은 오지 않는다. 서른이 되기 전에 한창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적이 있다. 녹초가 돼서 뻗으려고 잠들기 전에 2시간 이상 웨이트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서 받은 수면유도제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려다 그만뒀다.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잠들지 못할 때마다 약이 필요해질 것 같았다.


 하루에 2시간 밖에  자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졌다. 사소한 걱정이나 별것 아닌 일로 신경을 과도하게 쓰는 일이 늘어났다. 불면증에 좋다는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 보던 어느  나는 해법을 찾았다. 상추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상추를  주먹씩 먹었다. 쌈장에 찍어먹거나 드레싱을 뿌리지도 않고 그냥 통째로 입에 욱여넣었다. 맛보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 발동한  같았다. 플라세보 효과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일주일간 상추를 먹으면서 불면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마다  듣는 약이 따로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지금도 상추를 먹을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하면서 상추를 권했다. 불면의 고통에서 하루빨리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전 08화 매운맛이 지배하는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