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한 몸이다

by 김태민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다 창틀에 떨어져 죽어있는 모기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한쪽 날개가 사라진 상태였다. 모기는 비행능력을 상실한 채 비좁은 창틀 사이에서 발버둥 치다 굶어 죽은 것 같았다. 날개가 멀쩡했다면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죽기 전에 내가 발견했다고 해도 어차피 모기는 죽을 운명이었다. 번식을 위해서 흡혈을 하는 모기와 타협할 수는 없다. 소통할 수 없다면 협상은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을 비롯한 대다수의 동물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전기모기채에 걸려서 단 번에 불타 죽거나 말라가면서 아사하거나 결말은 어차피 같다.


생명의 끝은 죽음이다. 인간이나 모기나 별반 차이는 없다. 산란하고 죽는 모기나 자손 남기는 인간이나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완벽하게 동일하다. 충실하게 일생을 살아도 결국 마지막에는 죽는다. 피할 수도 없고 미룰 수도 없다. 의학발전으로 수명이 늘고 기술로 질병을 정복한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끝은 언제나 죽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앞날을 예측하고 싶어 한다. 모두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찾아올 죽음을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해하거나 죽음의 형태와 종류를 떠올리는 것조차 기피한다. 입에 담기만 해도 불길하게 여긴다.


탄생과 죽음은 내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기억한다. 갓난아이가 말이 없듯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 역시 말이 없다. 삶은 시작과 결말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책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살면서 인간은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지만 정작 죽음은 선택을 벗어나있다. 사람들이 죽음을 도외시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죽음은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맑은 거울이다. 끝이 있기 때문에 한 번뿐인 삶이 가치 있는 것이다. 겁먹고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면 계속 도망칠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문제는 받아들이는 것이 곧 해법이다. 두려움은 인정하는 순간 순응하게 되고 이해하는 순간 납득하게 된다.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다.


삶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죽음도 예상할 수 없다. 둘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다. 데칼코마니처럼 한 몸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생명활동이 정지하는 순간이자 일생의 끝이지만 삶이 완성되는 지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삶을 한 편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음은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결말이다. 그러나 죽음의 형태가 인생의 주제를 결정하지 않는다. 비극적인 죽음과 비극적인 인생을 동일선에 둘 필요는 없다. 죽음은 결말이지만 주제는 살아온 인생이 결정한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고통스러운 죽음이나 쓸쓸한 고독사는 분명 가슴 아픈 결말에 속한다. 하지만 결말까지 도달하는 삶이 아름답다면 최후의 순간은 작은 흠일 뿐 커다란 오점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삶의 가치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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