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by 김태민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는 담담한 기분으로 보게 된다. 멀지 않은 과거의 사건인만큼 현대사는 또렷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교과서로 배운 내용은 역사이기 전에 분명한 기록으로 남은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기록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선명한 기억이다. 살아있는 역사인만큼 연출로 각색된 감정적인 표현을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10.26을 거쳐 12.12로 이어지는 시기는 격동이라는 수식어보다 난전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왕좌를 차지하려는 자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시대는 혼란과 불안을 반복했다. 때로는 영화보다 현실이 훨씬 더 극적이다.


대의와 명분 앞에는 늘 욕망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시기와 시대만 달라질 뿐이다. 영원한 권력은 없고 시간이 지나면 역사는 평가를 내린다.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해도 역사의 중심에 설 수는 없다. 정점에 올라선다고 해도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진해서 내려오지 않으면 빼앗기게 될 뿐이다. 시대의 파도를 타면 대의를 내세울 수도 있고 명분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파도는 결국 올라가면 내려오게 되어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파도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가장 높이 있던 자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낮은 곳에 있던 이들은 순식간에 올라온다. 역사는 반복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와 안타까움이 아니라 무상함이었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감정은 사라지고 사실만 눈에 들어온다. 권력은 늘 정의를 이길 수밖에 없다. 승리한 자가 정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정의는 쉽게 패배한다. 세상은 동화책이나 만화처럼 정의가 승리하거나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곳이 아니다. 비관적인 표현이지만 엄연히 역사가 증명한다. 욕망으로 결집한 세력이 휘두르는 권력은 상식적인 정의를 여러 번 이겼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꼬집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비슷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정의는 승리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쉽게 패배한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는 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그러나 긴 시간을 두고 자세히 보면 욕망에서 시작된 권력은 늘 무너졌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역사는 언제나 권력을 심판했다. 그저 시간이 걸릴 뿐이다. 완전한 승자는 없다. 권력의 중심에서 자신들을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확신했던 이들은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온 세상을 움켜쥔다고 해도 결국 나이가 들면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손에 넣어도 죽을 때는 빈손이다. 인생무상은 가진 자일수록 더 크게 와닿을 수밖에 없다.


한 때 세상을 다 가졌던 그들은 말년에 무상함을 마주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들의 마지막을 상상해 봤다. 눈감는 순간에 과연 무엇을 떠올렸을까? 힘으로 누르고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어도 세상은 변한다. 권력에도 수명이 있다. 정점에서부터 천천히 하락이 시작된다. 예외는 없다. 화려한 시절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많이 얻은 만큼 내려가면서 전부 잃게 된다. 가파르게 상승한 만큼 떨어질 때 붙는 가속도는 매섭다. 바닥까지 추락하고 나면 영광은 없다. 추악한 인간이라는 차가운 낙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겨울은 없다. 겨울이 가면 결국 봄이 온다. 유례없는 혹한이 몰아칠수록 뒤늦게 찾아오는 봄은 더 찬란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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