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내려가는데 우편함에 편지가 잔뜩 꽂혀있었다. 이름을 확인해 보니 전부 오배송된 우편물이었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아마도 받는 사람이 집 주소를 잘못 기입하고 나서 수정하지 않은 것 같다. 남의 이름이 적힌 우편물이므로 뜯어본 적은 없다. 굳이 내용물을 유추해 보자면 직접 받을 필요 없는 지로용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취인이 수령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편지를 우편함에서 꺼내서 옆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가방에서 포스트잇과 펜을 꺼내 주소가 잘못 기입되었다는 내용을 적었다.
내가 사는 8동은 오래된 동네라 우편함이 외부에 있는 집이 많다. 옛날 다세대 주택은 대부분 계단 측면에 우편함이 붙어있다. 철제 대문에 우편함이 달려있는 주택도 흔하다. 종종 동네를 지나다 편지와 우편물이 한가득 들어있는 우편함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는 쓸쓸한 느낌이 든다. 받는 사람이 없는 편지는 발송되는 순간부터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게 될 운명이다. 대부분은 고지서겠지만 마음을 담은 편지 하나쯤 섞여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을 떠올려보면 가슴이 조금 먹먹해진다.
쓸데없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이유는 손편지의 따스함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기다림이 곧 간절함이었던 시대였다. 편지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펼치는 순간의 설렘이 떠올랐다. 글자에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을 확인할 때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환희에 휩싸였다. 나는 종이에 밴 잉크냄새를 유난히 좋아했다. 연필로 쓴 편지에서 나던 은은한 향까지 전부 기억 속에 남아있다. 마음을 글로 전하던 날들이 지금은 오래된 꿈처럼 멀게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도 그 시절이 품고 있었던 온도는 변하지 않는다.
기술발전으로 이룩한 디지털 시대는 예전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편리해졌다. 하지만 불편한 아날로그는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진심이 깃들어있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할지라도 결코 불쾌하지 않았다. 좋은 것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준 온기를 잊지 않는 것 같다. 체온을 품은 마음을 나누던 시절이 추억 속에 남아있어서 참 다행이다. 손으로 쓴 편지가 그리운 시대다. 글 속에 담은 마음을 수줍게 확인하는 기쁨을 나누고 싶어졌다. 이번 연말에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