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닐 때 들고 다녔던 프라이탁 가방을 당근으로 나눔 했다. 상태가 정말 좋아서 그대로 사용할까 했지만 마음을 굳혔다. 글을 올리자마자 가지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쇼핑백을 하나 꺼내서 가방을 담아 집 앞으로 나갔다. 인사와 함께 따뜻한 커피를 건네받은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가방을 양도했다. 물건을 나눔 하거나 중고로 구입할 때마다 소비보다 중요한 것은 마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건을 버리면 곧바로 쓰레기가 되지만 필요한 사람과 나누면 지속 가능한 소비가 된다.
옷 입기의 핵심은 덜 입고 덜 가지고 덜 사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서 정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일을 정하고 나면 옷을 많이 살 필요가 없다. 남들 따라 옷을 사거나 유행을 따라가느라 불필요한 소비를 할 일이 없다. 꼭 필요한 옷만 사면 그만이다. 그러므로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은 빨리 찾을수록 좋다. 스타일을 제대로 정하지 않으면 이것저것 시도하느라 옷만 잔뜩 사게 될 뿐이다. 옷장 가득 옷을 걸어놓고도 입을 옷이 없어서 쇼핑몰을 기웃거리는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소비에만 주목하고 있다. 리사이클링 소재를 사용한 옷과 신발을 사는 것은 주객전도다. 적게 입고 적게 사는 소비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먼저 관점을 재정립해야 한다. 옷은 그냥 옷일 뿐이다. 패션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패션에 대한 과대평가와 신격화가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동안 패션에 과도하게 부여했던 여러 의미를 걷어내고 본질을 바라볼 때다. 옷을 그냥 흔한 소비재로 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석유산업이나 건설 및 부동산 개발업을 두고 사람들은 환경오염문제를 거론한다. 그러나 의류산업을 두고 그런 지적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패션브랜드들은 일방적인 지지와 선망을 받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산업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패션계는 지탄받지 않는다. 사람들의 선망이 만든 신격화를 걷어내지 않는 한 소비의 전환은 불가능할 것이다. 옷은 그냥 옷이다. 대단한 철학인양 늘어놓는 복잡한 외래어로 만든 헤리티지는 마케팅에 불과하다. 명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사치품도 마찬가지다. 질리면 쓰레기가 되고 물리면 버릴 뿐이다. 옷은 마지막에는 쓰레기가 되는 운명을 타고났다. 사치스러운 명품 매장에 걸려있는 비싼 옷도 어차피 종착역은 소각장이나 매립지다.
패션산업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다. 가죽을 가공하고 화학섬유를 뽑아내기 위해서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 시장에서 소비되지 않은 막대한 재고는 그대로 쓰레기가 된다. 산업폐기물로 분류되는 의류는 소각하거나 매립하는데도 많은 비용이 든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착한 소비와 친환경생산을 강조하면서 캠페인을 벌인다. 그러나 정작 옷을 적게 사라고 말하는 브랜드는 거의 없다. 환경보호에 관련된 멋진 광고만 내보낼 뿐 사람들의 관점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 윤리적이고 합리적인 소비가 주류가 되면 매출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패션업계는 입으로는 환경을 말하면서 여전히 신제품을 쉴 새 없이 내놓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결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꼭 필요한 것만 사는 태도가 중요하다. 없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사야 한다. 남들 다 있다고 나도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좋다고 해서 나까지 살 필요는 없다. 유행한다고 살 이유는 없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다면 사도 쓰레기가 될 뿐이다. 쉽게 사면 더 쉽게 버리게 된다. 고심해서 소비하고 버리지 말고 나누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어린 시절 유행했던 아나바다 운동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착한 소비의 본질이다. 물건을 깨끗하게 아껴 쓰고 사람들과 나눠 쓰고 필요하면 서로 바꿔 쓰고 돌려가며 다시 쓰는 것.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나눔과 재사용을 늘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 옷 입기의 핵심이다.
시간이 지나면 옷은 모두 쓰레기 된다. 예외는 없다. 명품이라는 가면을 쓴 사치품도 재고떨이를 한다. 소각로나 매립지에 들어가는 운명은 유니클로나 에르메스나 똑같다. 팔리지 않는 옷은 모두 폐기물이 된다.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패션은 지구를 오염시키는 주범이 된다.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욕구와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싶은 욕망이 옷을 더 많이 생산하게 만든다. 패션산업은 인간의 욕망을 원동력 삼아 성실하게 환경을 파괴한다.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게 사고 적게 입는 것이다. 옷을 소비하는 욕망을 덜어내는 것이 지속 가능한 미래로 가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