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Jan 10. 2024

브랜드를 넘어 스타일로

 맥모닝을 먹고 있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차고 있는 세이코 알바웹이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생 시절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계라 오랜만에 봐도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핌프와 알바웹 그리고 지샥 프로그맨은 한 때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지금도 꽤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걸 보면 로망은 잠시 잊힐 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패션이 다시 유행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템을 종종 만나게 된다. 최근 베이프는 기무라 타쿠야 패딩으로 유명한 레더 패딩을 20년 만에 재출시했다.


 트렌드는 돌고 돈다. 패션은 자기 복제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미의식을 흡수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레트로가 뉴트로를 쉽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90년대 시부카지와 2000년대 아메카지는 2020년대 스트릿룩과 만나면서 진화했다. 해브해드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면서 패션은 진보한다. 코로나 내내 이어지던 애슬레저 룩은 고프코어로 변모했다. 편한 옷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루즈핏은 2020년대를 대표하는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경제불황이 레트로 무드를 불러온 것은 맞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양성에 대한 욕구다.


 천편일률적인 트렌드와 패션에 식상함을 느낀 사람들은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다. 믹스  매치는 시대를 넘나 든다. 2000년대 스포츠맨들이 쓰던 오클리의 고글이나 20  디카를 사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옛날 것을 구식으로 치부하지 않고 클래식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된 변화다. 사람들은 이미 문화적인 특수성이나 성별에 국한된 스타일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남자들이 샤넬의 트위드 재킷을 입고 2.55 백을 들기도 하고 바이커족의 상징이었던 라이더 재킷은 여자들이 사랑하는 아이템이 됐다.


 2020년대는 많은 장벽과 고정관념이 하나씩 무너지는 중이다. 피로감을 키우는 PC라는 이데올로기와 별개로 스타일은 다양성을 꽃피우고 있다. 여전히 클론룩이 계절을 지배하고 있지만 개성을 앞세운 다채로운 스타일도 많이 보인다. 무난하고 단정해 보이는 패션을 지향하는 한국 특유의 복식문화도 차츰 변화하고 있다. 구매력이 올라가는 호황기의 패션은 사치품 소비가 심해진다. 누구나 명품을 사는데 혈안이 되면서 스타일이 비슷해진다. 자산거품이 극에 달했던 코로나 시기 발란이나 머스트잇에서 불타나게 팔렸던 명품을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불황이 시작되면 소비력이 저하되면서 저렴하게 연출할 수 있는 패션에 눈을 뜨게 된다. 다양성이 주목받는 것이다. 저성장 시기는 빈티지 시장이 활성화된다. 영국병으로 고생하던 시기 영국의 플리마켓이 각광받았고 버블경제가 종식되고 찾아온 잃어버린 20년간 일본의 빈티지 업계는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빈티지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간 점을 생각해 보면 이제는 한국 차례다. 중고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스타일을 아카이빙 한다는 관점이 자리 잡았다. 서울만 해도 빈티지 샵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중이다. 번개장터나 후루츠패밀리는 빈티지 섹터에 집중하면서 빈티지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패션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트렌드를 보면 시대의 중심에 자리 잡은 대중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빠르게 소비되는 스타일이 많지만 과거에 비해 패션의 수명은 많이 늘어났다. 브랜드를 소비하는 시대를 벗어나 스타일을 소비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범답안을 답습하지 않고 다양성을 내세우면서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삶은 더 행복해진다. 패션에 정답은 없다. 상식과 기준에 집착하면서 남의 눈치를 보는 습관을 버리면 옷 입기는 훨씬 즐거워진다.

이전 20화 에르메스도 쓰레기가 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