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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Feb 22. 2024

번아웃은 심리적인 탈진이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나는 탈진으로 바꿔 부르고 싶다. 번아웃은 심리적인 탈진이다. 다시 시작할 기력도 현상을 유지할만한 여력도 없는 그로기 상태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발생하는 과로가 적재중량을 넘어가면 몸이 망가진다. 인간의 마음도 신체기관이다. 몸이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당연히 정신도 유지하기 힘들다. 그래서 번아웃이 만드는 심리적인 탈진은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중량초과로 균형을 잃고 도로 위를 나뒹구는 트럭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다.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내면이 딱 그런 상태다.


 버티지 못할 만큼 혹사하게 되면 몸과 마음은 위험신호를 보낸다. 여러 번 경고하면서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된다는 사인을 준다. 자의든 타의든 이 긴박한 시그널을 무시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마음에는 근육이 없다. 한 번 크게 다치면 회복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사람을 갈아 넣어서 돌아가는 집단이나 기업은 그래서 인명을 경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높은 급여와 보상은 최고의 복지가 맞지만 다친 영혼에 특효약은 아니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총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휴식과 회복을 통해 제대로 충전하지 않으면 심신이 버틸 수 없다. 방전된 배터리는 수명이 점점 줄어든다. 번아웃을 겪고 나면 채우고 채워도 금세 닳아버리는 손상된 상태가 된다.


 문제는 본인이 심리적인 탈진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제대로 자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에 시달리는 업계가 적지 않다. 누군가는 산더미 같은 과업을 완수한다. 이런 사례를 모범으로 삼고 목표로 삼게 만든다. 성공으로 포장하고 많은 보상을 내걸면 노동자는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인생을 갈아 넣어서 만든 성과가 성공으로 인정받는 나라에서 피로와 과로는 투정일 뿐이다. 몸이 보내는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말하면 앓는 소리 하지 말라는 질책이 돌아온다. 격려와 인정을 가장해서    해보자는 채찍질을 하는 곳도 흔하다.


 무리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남들보다 못하면 밀려나는 상황에서 전력질주로 챗바퀴를 돌리다 보면 관절은 닳고 근육은 파열된다. 몸에서 비명을 지르고 머리에서 사이렌이 울려도 앞만 보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 극소수의 수재들이 인생을 갈아 넣어서 만든 업적을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풍토가 번아웃을 양산하고 있다. 가까운 친구는 뛰어난 성과를 내려고 진통제와 각성제를 먹어가며 일했다. 덕분에 입사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관리직에 올라갈  있었다. 대신 친구는 몸을 혹사한 결과 1  무려 6가지가 넘는 질환을 갖게 되었다. 매주 병원을 찾지 않으면 일을   없을 만큼 건강이 나빠졌다.


 국내 최고 IT기업을 다녔던 친한 동생은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고액연봉을 받는 자리였지만 일이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많았다. 퇴사 직전  달간 2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우울증을 진단받고 현재 투병 중이다. 고통을 호소하면 윗사람들은 역경을 이겨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낸 극소수만이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논리는 거짓말이다. 회사는 전쟁터가 맞지만   잘한다고 바닥에서 올라가 왕좌에 앉는 사람은 없다. 싸움을 잘하는 병사는 훈장   받고 끝까지 싸우다 전쟁터에서 죽는다. 멀리서 손짓으로 병사를 부리는 수뇌부만 승전의 기쁨을 만끽한다. 영광과 전리품은 그들의 몫이다.


 번아웃은 기업입장에서는 소모품의 유통기한이 다되었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의료혜택과 휴식을 보장하고 지원해 주지만 그렇게 자리를 잠시 떠나면 입지는 좁아진다. 다시 불러  때는  이상 상황은 예전 같지 않다. 그때쯤 깨닫는다. 내가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사실과 오롯이 바친  인생이 사라졌다는 것을. 일은 수단이다. 인생의 목적도 아니고 목적지도 아니다. 회사가 우리를 책임지지 않듯이 노동은 인간을 구원해주지 않는다. 기대한 만큼 배신당하고 믿었던 만큼 절망하게 된다. 이로 인해 번아웃으로 인한 심리적인 탈진은 정서적인 불안과 삶에 대한 회의감을 가속화시킨다.


 들불이 산에 옮겨 붙으면 산을  태워야만 꺼진다. 어느 누구도 불길을 잡을  없다. 내면의 열정과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순수한 기대까지 모두 집어삼킨다. 인간적인 감정을 전부  태우고 나서 속이  비게 되면 그제야 불길이 잡힌다.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속이  비고 나면 열의와 열정을 발휘하기 힘들다. 일하는 의미도 없고 사는 이유도 모르겠다 싶은 날들이 이어진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거나 아예 은둔하고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경우도 있다. 안타까운 점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번아웃의 희생양이 된다는 점이다. 가늘고 길게 중간만 가자는 마인드의 직장인들은 번아웃을 겪을 일이 없다.


 솔선수범하는 태도와 열정적인 상승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번아웃에 빠지기 쉽다. 사람을 무리하게 만드는 외부의 개입에 훨씬  취약하다. 성실할수록 책임감이 높고 의지가 강할수록 참고 견디려는 인내심도 강하다. 속이 검은 인간들은  점을 악용해서 사람을 일하는 기계로 만든다. 성과를 뽑아내는 기계가 고장 나거나 망가지면 폐기하고 새로운 기계를 찾아온다. 워커홀릭이라도 번아웃은 조심해야 한다. 자기 몸상태를 자기가 제일  안다는 말처럼 멍청하고 태평한 소리가 없다. 자기 과신은 자존감이 아니라 오만에 불과하다. 그런 오만이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나면 극도의 자기혐오에 시달려야 한다.


 인간은 F1머신이 아니다. 삶은 레이스가 아니라 마라톤에 가깝다. 소형차를 타고 레이스에 출전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뛰어들라고 부추기는 소리가 들리면 귀를 막아야 한다. 적당히 하고 적절하게 쉬는 것은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니라 생존확률을 높이는 지혜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잠시  성과를  수는 있어도 평생의 업적을 남길 수는 없다. 그전에 일하다 죽는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우선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 늦기 전에 정말  늦기 전에 나를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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