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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Feb 29. 2024

회색빛 마음

세상에서 제일 복잡한 것은 사람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색깔로 나타낸다면 회색빛에 가까울 것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선과 악을 모두 지니고 있다. 추앙받는 성인이나 추악한 악인처럼 흑과 백의 선명한 빛깔을 품고 있는 인간은 드물다. 우리는 적당히 선하고 필요에 따라 악한 존재가 된다.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다. 그러므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사회적인 지위와 현재상황 그리고 과거의 행적까지 종합적으로 확인해야만 한다.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이미지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10년 전 대학생 시절 NGO에서 실습을 했다. 나는 금요일마다 신림동 인근에 있는 공원에서 빵을 나눠주는 행사에 참여했다. 직원과 실습생들은 명부를 확인하면서 빵을 나눠줬다. 명단에는 지역 내 취약계층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신분증을 내밀거나 이름과 전화번호를 말하고 사람들은 빵을 받아갔다. 그러다 몇 번 소란이 발생했다. 누군가 아픈 사람 대신 왔다면서 빵을 받고 사라진 것이다.


 세네 명 분을 속여서 받아간 사람도 있었다. 명단에 올라가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외워서 빵을 빼앗은 적도 있었다. 고성이 오가며 드잡이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가난하면서 착한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동화는 어디까지나 허구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속이면서 악다구니를 부리는 것을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실습생 중 유일한 남자였던 나는 직원과 함께 다툼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상황을 정리하고 해명을 요구하면 사람은 달라도 대답은 늘 비슷했다.


 어차피 공짜로 나눠주는 건데 상관없지 않냐는 변명이 기가 막혔다. 실습기간 내내 비슷한 일은 여러 번 발생했다. 남의 신분증을 훔친 사람도 있었고 이웃주민을 사칭하면서 빵을 받아가려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 고작 4천 원 남짓하는 빵을 받아가기 위해 그들은 양심을 버렸다. 처음이 어려울 뿐 한 번 양심을 내다 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쉽다. 탐욕과 빈곤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든다. 부자들이 더 가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빈민은 당장의 만족을 위해서 죄를 저지른다. 범죄의 유형만 다를 뿐 동기는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똑같다. 극과 극은 통한다.


 고정관념은 현실의 다양한 사례를 해석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자가 나쁘다는 편견은 사회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매일 저녁마다 뉴스로 상류층의 범죄와 악행을 접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시각 없는 인간들끼리 서로 먹고 먹히는 생활범죄 역시 끊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이 착하다는 동화적인 상상은 성인이 되면 점점 사라진다.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지표를 토대로 인간의 선악을 구분할 수는 없다. 어느 계층이든 뒤틀린 인격을 소유한 인간들이 악행을 일삼는 것뿐이다.


 일반화된 이미지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 겉모습만 보고 알아차릴 수 없을 뿐 마음의 회색빛이 검게 변한 이들은 어디에나 널려있다.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특히 사람이 그렇다. 이미지는 편향된 사고가 반영되는 결과물이다. 겉모습과 행동은 분명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지표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보의 일부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본질을 파악할 수는 없다. 가까운 사이라도 누구나 비밀을 품고 산다. 그래서 다 안다는 착각은 늘 오해와 갈등의 씨앗이 된다. 확실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편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분법으로 세상을 구별하는 일은 참 쉽다. 현상을 간결하게 분석할 수 있고 간단하게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분법적인 사고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흑과 백이 뒤엉킨 잿빛의 마음은 너무나 많은 변수를 품고 있다. 악을 숨기기도 쉽고 선을 감추는 것도 용이하다. 속이려는 마음을 먹은 사람을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회색빛 인간들 사이에서 선한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티가 난다. 선행은 일관성이 있다. 좋은 품성은 어딜 가나 드러나는 법이다. 물론 악행도 일관성이 존재한다. 나쁜 짓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


 악은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심화과정을 거쳐 진화한다. 그래서 악행을 일삼는 사람일수록 은폐능력이 발달한다. 가면을 쓰고 이미지를 위장해서 악한 마음을 덮는 것이다. 선한 모습을 만들고 그 아래 사악한 이면을 품고 살기도 한다. 마음이 검은 자를 골라내는 일은 쉽지 않다. 누가 봐도 검은 마음을 가진 인간은 티가 나겠지만 작정하고 숨긴다면 알아챌 수 없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사람이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은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의지와 소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폐지를 주워서 생활하는 어르신이 한 분 계셨다. 그분은 돌아가시면서 모아둔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기증했다. 선을 실천하는 마음은 경제적인 조건과 큰 상관이 없다. 재단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돕는 부유한 자선가와 같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인덕과 빼어난 인성을 지닌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바른 삶을 산다. 빵을 받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들에게는 선의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따뜻함이 있었다. 악행보다 선행을 실천하려는 마음이 조금 더 보편적인 태도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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