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Mar 07. 2024

공허함으로 물들다

공허감에 사로 잡히면 삶의 의미는 사라진다

 아침부터 가루비가 내리고 있다. 흩날리는 빗방울은 눈으로 분간하기 쉽지 않을 만큼 작다. 사람들은 장대비가 오면 우산을 꺼내지만 가루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정작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람을 물에 젖은 생쥐꼴로 만드는 쪽은 장대비가 아니라 가루비다. 입자처럼 고운 물방울이 사방에서 날아들면 우산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비를 입지 않는 이상 속수무책으로 젖어버린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처럼 사소한 것들은 사람을 방심하게 만든다. 다들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무시한다. 감정은 눈과 비슷하다. 눈송이는 쉽게 녹지만 쌓이고 나면 여간해서는 녹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감정이라도 누적되다 보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기다 보면 내면에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위로할 여유는 없다. 시간의 여유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넘겨버린다. 눈앞의 일에 열중하다 보면 힘든 감정을 금방 잊게 된다. 대부분의 사회인들은 이런 식으로 견디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견디는 만큼 스트레스는 누적된다.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면서 붕괴의 가능성도 점점 증가한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내면의 내구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사람들이 더 쉽게 무너진다.


 붕괴의 전조는 언제나 공허한 감정에서 시작된다. 일시적인 우울감은 노력하면 털어낼 수 있다. 그러나 공허감은 다르다. 허무함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현타’라는 말을 장난처럼 가볍게 쓰지만 이면에 숨겨진 의미는 제법 무겁다. 한 번 시작된 현타는 사라지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겪다 보면 공허한 감정은 점점 심해진다. 일의 재미를 잃어버리고,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막막한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상담도 받아본다. 그러나 늘 그때뿐이다. 잠시 눈길을 돌리는 것일 뿐 공허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혼자가 되면 느닷없이 튀어나와 가슴속을 엉망으로 만든다.


 한계에 직면하면 사람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덮어놓고 모른 척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극복할 수 없는 무력감이 가슴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퍼진다. 우울한 파란빛으로 물든 내면은 본래의 모습으로 쉽게 돌아가지 못한다. 회복하는 힘도 극복하는 의지도 무기력과 우울감 앞에 동력을 상실하고 사라진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힘들다. 다 그만두고 싶어 진다. 모두 버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무 의미 없는 삶을 반복하느라 피곤하다. 다 포기하고 나면 편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 사라지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마음이 든다. 극단적인 상상을 떠올려본다. 소중한 사람들이 있지만 의지할 수 없다.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기댈 수는 없다. 결국 혼자다. 외롭고 괴롭다.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히면 점점 생기를 잃어버린다.


 공허한 감정은 의지를 앗아가 버린다. 삶의 의지가 사라지면 행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가까운 친구나 하나뿐인 가족들이 옆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쉽지 않다. 의지는 내면에서 나온다. 자신이 잃어버린 인생의 가치를 남이 만들어줄 수는 없다. 공허한 감정이 영혼을 잠식하고 나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너진 마음은 폐허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불모지로 변한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에 비가 내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울감과 무력감이 추억마저 잠식하고 나면 사람의 마음은 사막처럼 황량하게 변한다. 무너진 마음을 재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공허감이 이들을 괴롭힌다.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지칠 때가 있다. 그때 자신을 돌보지 못하면 마음의 상처는 점점 악화된다. 소중한 배우자와 자녀들이 곁에 있지만 외로움과 허무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하다 보면 몸과 마음은 지쳐버린다. 가슴속의 답답함은 중년의 위기와 맞물려 심리적인 고립으로 이어진다. 외로운 감정이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감으로 이어지면 손쓸 방법이 없다.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계속 참다 보면 결국 문제가 터진다. 익숙한 근무복 대신에 환자복을 입게 된다.


 공허한 마음을 쉽게 털어내는 방법은 없다. 마음의 날씨나 계절이 변한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내 마음이 괜찮은지 내면을 자주 살펴봐야 한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빠르게 말을 타고 달리다 한 번씩 뒤를 돌아봤다고 한다. 자신의 영혼이 쫓아오지 못할까 봐 경계한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한국 사회는 정시보다 10분 일찍 출발하는 버스와 같다. 제시간에 오면 이미 만석이다. 다들 빨리빨리 사니까 그보다 더 빨리 살아야만 살아남는다. 여유도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도 속도에 밀려 사라진다. 늦게나마 이제부터 나를 돌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가랑비에 젖는 옷처럼 사람의 마음도 쉽게 젖는다. 내면의 날씨를 확인하면서 비와 바람을 경계하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이전 06화 회색빛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