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사교육의 나라다. 교육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입시와 진로 그리고 직업선택에 이르기까지 사교육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국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배움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은 교육이다. 그러나 노화는 예외다. 잘 사는 법을 주제로 한 강의는 넘쳐나지만 잘 늙는 법을 알려주는 곳은 없다. 노화의 고유한 특성과 신체적인 변화를 가르쳐주는 교육과정도 없다. 무방비상태로 노화에 직면하고 준비 없이 노화를 맞닥뜨리면서 혼란과 불안은 가중된다.
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애주기적 변화는 혼란을 동반한다. 사춘기나 결혼과 출산처럼 노화도 똑같다. 누구나 삶은 한 번이다. 노인이 된다는 현실은 처음 겪는 일인 만큼 무척 어색하다.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는 마음의 준비가 꼭 필요하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다 괜찮은 사람은 없다. 노인들은 무슨 일이든 다 이해한다고 여기는 생각은 고정관념이자 편견이다. ‘사랑한다’는 한 마디가 간절하고 ‘힘내라’는 응원도 그립다. 하지만 의지할 곳도 없고 속내를 토로할 사람도 없다.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고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홀로 외로움을 삭이고 고독을 삼키면서 버틴다. 의연하고 덤덤하게 노년의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한국의 고도성장기는 인내가 미덕인 시대였다. 버티는 자는 강자고 참는 자는 승자라는 인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세상이었다. 그 시절을 뜨겁게 살았던 젊은이들은 이제 다들 노인이 됐다. 강산이 변하고 세상이 달라졌지만 과거의 그림자는 의식 깊은 곳에 드리워져있다. 그때처럼 혼자 감내하려고 애쓰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다.
기운이 빠지면 탈력감이 밀려온다. 몸도 나이가 들지만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우울감은 노년기에 수시로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느끼는 무력감은 무기력한 우울감을 끌고 온다. 당연하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포기하게 되면서 자신감도 줄어든다. 입으로는 별일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속은 외롭고 또 괴롭다. 노화가 동반하는 신체적인 변화와 심리적인 불안감 앞에서 마음이 약해진다. 감정의 양상이 달라지면서 당혹감을 느끼도 한다. 처음 겪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노화에 적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지속적인 응원이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 큰 힘을 얻는다. 여전히 도전할 수 있고 아직도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노화를 퇴행으로 보는 기능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더 잘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나 강자다. 노화는 상실과 퇴행을 동반하는 퇴화가 아니라 생애주기의 새로운 변화다.
어느 날 갑자기 노인이 되는 사람은 없다. 노화는 지속적인 변화를 동반한다. 점진적으로 늙는 만큼 노화속도에 맞는 국가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 잘 늙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가르침을 받고 싶은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노인 인구가 천만명을 바라보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노화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교육의 목적은 행복이다. 잘 늙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잘 사는 법의 마지막 챕터는 잘 늙는 법이다. 완성도는 마무리에서 결정된다. 끝이 좋아야 진짜 좋은 것이다.
노화는 생애주기의 마지막 관문이다. 알아서, 잘, 눈치껏, 남들처럼 살아남으라는 냉정한 관점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노년의 위기 속에서 고군분투하다 시들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은 인권의 지표나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에게 각자도생을 종용하는 집단의 미래는 어둡다. 어려운 시기에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지만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는다. 생애주기의 마지막 관문으로 향하는 튼튼한 다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