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길거리가 건강한 노년을 만든다

by 김태민

트로트는 한국 장노년층의 정서적 공감대가 됐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트로트가 빠질 수 없다. 지난주 마을 축제 무대에 등장한 트로트 가수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일어서서 춤사위를 뽐내는 분들도 있었다. 트로트를 즐겨 듣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채널만 돌리면 트로트 관련 예능이 수돗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트로트의 홍수가 지상파와 케이블을 잠식했다.


잠시 유행하다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5년째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트로트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은 금세 사그라들지만 숯불은 아주 오래 탄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트로트 서바이벌 출신 가수들의 콘서트는 늘 매진이다. 집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콘서트홀에 올해만 세 명의 트로트가수가 다녀갔다. 같은 색깔의 옷을 맞춰 입은 할머니 팬클럽이 공연장 앞에서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응원봉을 손에 들고 있는 관람객 대부분은 6,70대 노인이었다. 대형버스를 대절해서 지방에서 올라온 열의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노인팬들은 입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애정의 방향이 일방통행이므로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트로트에 대한 장노년층의 애정은 열정이라고 불러도 충분할 것 같다.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선호도는 각자 다르지만 트로트 장르에 관한 호감도는 거의 동일하다. 공통의 관심사인만큼 노인들은 트로트를 들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트로트는 노인들을 하나로 묶는 일종의 사회적 언어다. 팬카페나 유튜브를 통해 만나서 모임을 갖기도 한다. 콘서트에서 만난 인연을 계기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노인 특유의 친화력에 더해서 트로트는 라포를 형성하는 좋은 주제가 된다.


대상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이나 주제를 갖고 살 수록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열정은 삶을 생기 있게 만든다. 변하지 않는 열렬한 마음은 모두 사랑이다. 사랑만큼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감정은 없다. 공연장에서 본 노년의 팬들은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아이들이 연예인이나 유튜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설레는 모습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가수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은 아이들 못지않다.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이 맨날 트로트만 듣는다고 짜증 낼 필요는 없다. 열렬하게 좋아하는 대상이 있다면 체력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건강하다는 의미다.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가수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공연에 다녀와서 소녀같이 웃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알게 됐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나이를 초월한다. 즐길거리는 노년의 삶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좋다. 연예인 팬클럽에 가입할 수도 있고, 탁구나 수영 같은 스포츠 활동도 좋다. 모임이나 동호회 같은 커뮤니티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배움에 대한 열정을 발휘하는 것도 멋진 일이다.


대학시절 봉사활동에서 만난 할머니는 손주들과 첫 여행을 간다면서 영어를 배운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열정과 애정은 나이와 상관없다. 오히려 노년이 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좋아하는 것을 새로 발견할 수도 있다. 아버지는 트로트를 좋아하게 되면서 키보드를 샀다. 연주는 많이 서투른 편이었지만 그 모습 자체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요즘요리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새로운 레시피를 접하면서 음식을 만드는 일이 더 즐거워졌다고 이야기했다. 노년에도 삶은 다채롭게 변화하고 발전한다.


정체된 것처럼 보이는 삶도 사랑이나 열정 같은 자극제가 주어지면 달라진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꽃이다. 좋아하는 일이나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아름답고 멋진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열매 맺기에 늦은 시기는 없다. 봄에 피는 꽃이나 가을에 피는 꽃이나 전부 다 꽃이다. 청춘이나 노년이나 사랑하고 산다면 똑같은 봄이다. 배움과 사귐은 끝이 없으므로 삶을 늘 풍요롭게 만든다. 사랑하는 마음이 건강한 인생의 핵심이다.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라도 좋다. 즐길거리만 있다면 삶은 훨씬 행복해진다.


체력이나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도 가치는 퇴색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일하는 지인은 좋아하는 가수의 영상이나 노래를 듣는 노인들이 회복이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노년에도 생업을 지속하는 어르신들은 트로트를 달고 산다. 트로트는 그들에게 응원가이자 노동요다. 애정과 열정은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내게 만드는 마법이다. 열망하고 소망한 것들이 모여 인생을 구성한다. 청춘은 짧지만 노년은 길다. 사랑은 한 때가 아니라 평생 하는 것이다. 백세시대는 사랑하고 열망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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