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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Sep 22. 2024

늦여름과 초가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아침이다.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공기가 시원했다. 침대에 누워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 밖의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투명한 파란빛으로 가득했다. 높게 솟은 적란운이나 머리 위로 낮게 드리운 비구름은 이제 다 지나갔다. 시야 가장자리에 들어온 햇살이 하얀 실선을 그리며 잠시 반짝였다. 눈을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한다. 현재 기온은 17도. 앞자리가 달라졌다. 가을이다. 지긋지긋한 중부지방의 여름은 10월을 코 앞에 두고 끝났다. 아침부터 사방에서 들리던 매미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바람을 타고 풀벌레의 잔잔한 노랫소리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계절은 늘 비와 함께 찾아오고 비랑 같이 지나간다. 이틀간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면서 계절이 달라졌다. 지난 금요일은 장마철에나 볼 수 있는 집중호우가 밤늦게까지 쏟아졌다. 비는 토요일 아침까지 내리다 멎었다. 짙은 비구름이 물러나고 오전이 되자 공기가 달라졌다. 여름 내내 맡을 수 있었던 물비린내와 흙냄새는 자취를 감췄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피부에 들러붙는 눅눅한 습기는 청량한 수분감으로 변했다. 물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셔츠를 꺼내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했다. 9월의 늦더위는 비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여름은 1년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4월 말부터 10초까지 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는 9월 말에도 한낮 기온은 26도를 넘나 든다. 남부지방은 호우와 폭염이 반복되면서 여름이 더 길게 이어진다. 며칠간 가을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계절은 지역별로 격차가 존재한다. 여름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분명 가을이지만 완연한 가을은 한참 멀었다. 계절의 경계선은 무의미해졌다. 철쭉 필 무렵 사람들은 반팔을 꺼내 입고 단풍이 지기 전에 눈이 내린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여름만 길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름은 눈치도 염치도 없다. 갈 때가 왔다고 해서 쉽게 단념하고 물러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창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 끝에 닿은 햇살이 아직 따갑다. 온기는 금세 열기로 변했다. 비 온 뒤 공기 중에 녹아있던 물기가 빠르게 말랐다. 다음 주 날씨를 확인했다. 낮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날씨가 며칠 동안 이어질 예정이다. 셔츠에 재킷을 입으려면 한참 멀었다.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후텁지근한 여름밤은 사라졌지만 한낮은 여전히 덥다. 가을철에도 오후 내내 뜨거운 햇볕이 비처럼 쏟아진다. 사계절을 나누는 것보다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으로 여름을 세분화하는 것이 나을 지경이다.


 뚜렷한 사계절이 아름다운 한반도라는 표현은 옛말이 됐다. 봄과 가을을 집어삼키면서 세력을 확장한 여름은 이제 계절이 아니라 기후가 된 것 같다. 유행이 확산되면 현상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확고한 경향으로 자리 잡는다. 날씨도 비슷하다. 일 년 중 절반은 여름이고 겨울은 3달 반정도 이어진다. 봄가을을 다 합쳐봐야 두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열대야는 두 달 가까이 이어졌고 풍요로운 한가위 연휴 내내 33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온대기후가 아열대기후로 변하면서 여름의 손을 들어준 모양이다. 불공평하다고 불평해도 날씨는 사람 맘도 모르고 변하지도 않는다. 답답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사는 날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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