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계 투자가 줄어드는 이유
벤처 투자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모험의 결과물은 고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차별화된 혁신이 없다면 리스크만 있을 뿐 리워드는 없다. 국내 스타트업계에 한파가 불어닥쳤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정작 해외스타트업들은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중국의 문샷 AI는 설립 10개월 만에 33조 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알리바바는 1조 원을 투자했다. 클로드 3을 출시한 미국 앤트로픽의 가치는 40조 원을 넘겼다. 브라질은 100개가 넘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존재한다. 워런 버핏이 투자한 누뱅크도 브라질 핀테크 기업이다. 일본 스타트업계는 작년대비 무려 70%가 넘는 해외투자를 받았다.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말은 과장이다. 스타트업 불황은 한국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해외는 여전히 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외면받고 있을 뿐이다. 벤처투자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더브이씨의 자료를 보면 냉혹한 현실이 드러난다. 2023년 말부터 스타트업에서 고용을 축소하는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2024년 상반기 초창기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37% 금액은 28% 감소했다. 자금이 말라가는 상황에 인력을 충원할 여유는 없다. 투자금은 시리즈 D 이상 투자받은 안정된 곳으로 모였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올해 벤처 투자 분야에서 누적 투자액이 큰 후기 스타트업 비중은 거의 50% 에 달했다. 검증된 곳을 제외하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많다.
물론 성과를 낸 국내 스타트업도 있다. 올해 트웰브랩스는 700억 원의 해외투자유치를 이끌어냈다. 마이리얼트립도 750억 원 대의 VC투자를 받았다. 스트라드비전은 420억, 앨리스는 200억 원대의 투자 성과를 올렸다. 이들은 행운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규제나 낡은 제도를 문제 삼지만 진짜 문제는 기술력과 경쟁력이다. 혁신을 말하지만 진정한 혁신을 선보이는 스타트업은 드물다. 당장 글로벌시장에서 미국, 중국, 유럽의 IT기업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돈을 투자하는 이들은 냉철하고 냉정하다. 실력이 없다면 지갑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혁신에 대한 갈망에서 스타트업이 나와야 정상이다. 기업은 조직이 커지면서 운영구조가 비대해지면 경직성이 생긴다. 성장이 둔화되면 도전보다 사업성을 우선하는 시점이 온다. 이때 기업이 만든 시장의 경직된 틀을 극복하려는 스타트업이 등장한다. 올바른 스타트업은 모험정신을 품고 꿈을 향해 전진한다. 그러나 한국은 비싼 값에 털고 엑시트 하려는 창업자들이 수두룩하다. 과장일까? 해외는 엑시트 한 자금으로 벤처투자업체를 세우거나 다른 분야로 연쇄창업하는 기업가들이 많다. 그러나 국내는 VC나 사모펀드에 지분을 판 돈으로 서울 부동산을 구입하는 사업가들이 언론보도를 탔다.
코로나 시기 전후로 스타트업은 그야말로 폭증했다. 그럴싸하게 포장한 IT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온갖 벤처들이 크고 작은 투자를 받았다. 대부분 국내 대기업, VC, 사모펀드, 투자조합에서 나온 돈이다. 경기부양 목적으로 시장에 풀린 돈이 넘쳐나던 시기다. AI와 IT만 붙으면 요식업에도 투자금이 몰렸다. 그러나 버블이 가라앉고 과열된 시장이 식으면서 스타트업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제대로 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은 극소수였다. 거창한 사업계획서와 초기멤버의 화려한 커리어만 내세워서 돈을 챙긴 곳이 적지 않았다. ‘계획된 적자’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지만 기술력이 없으면 적자는 폐업으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애초에 스타트업을 설립하는 목적부터 문제다. 혁신이 아니라 엑시트를 목적으로 창업한 업체가 수두룩했다. 처음부터 투자금이나 상장을 미끼로 한탕해 보려는 이들이 많았다. 사업을 키워서 털고 나가려는 창업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비아냥이 아니라 현실이다. 크립토 스타트업들의 러그풀은 악명이 자자하다. 핀테크나 이커머스 역시 다단계나 다름없이 운영하다 사라진 케이스들이 존재한다. 합병을 통해서 몸집만 키우다 쓰러진 옐로모바일, 전국민적인 공분을 샀던 머지포인트도 스타트업이었다. 올하반기 논란의 중심이 된 티몬과 위메프는 불과 작년까지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으로 인정받는 곳이었다.
성과를 내고 돈을 버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대다수는 돈을 목적으로 겉치레식 성과를 내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투자금을 받으려면 결과물이 필요하다. 잘 나가는 국내외 VC나 대기업의 돈을 받아 챙기려면 혹할 만한 키워드가 중요하다.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BM이나 글로벌 스타트업들의 사업모델을 베껴온다. 말만 벤치마킹이다. 속 빈 강정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스타트업은 적자라는 상식이 팽배하다. 방만한 경영을 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 꿈에 가격표를 붙여서 파는 것뿐이다. 시리즈 투자를 받고 라운드가 늘어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과가 미진하면 투자금 부족으로 둘러대면 그만이다. 사실상 스타트업은 성과를 볼모 삼아 벌이는 폰지다.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한국 스타트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글로벌 수준의 압도적인 역량을 지닌 곳은 정말 극소수다. 해외 유명 VC로부터 투자를 받은 곳만 검색해 보면 현황을 알 수 있다. 기술이 없는 스타트업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BM을 선택한다. ‘수수료를 받아먹는 내수시장 전용 플랫폼’이다.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산업을 타깃으로 삼는다. 트렌디한 UXUI를 붙여 넣고 혁신인양 포장하고 홍보한다. 무료로 서비스를 오픈해서 사용자가 적당히 모이면 수익화를 시도한다. 서로가 서로를 자가복제하는 수준이므로 수법은 대동소이하다. 플랫폼을 만들고 수수료 장사로 재미를 본 카카오나 배달의민족의 선례는 교과서가 됐다.
폰지는 필연적으로 버블을 만든다. 양산형 스타트업은 산업 전반에 버블을 형성하는 주범이다. 말만 스타트업이지 태반이 중개수수료 받는 중개업체에 불과하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규모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시효과다. 유통과정이 하나 더 늘어나면서 비용만 증가한다. 플랫폼을 만들면 통계는 운영사인 기업이 낸다. 스타트업의 운영비와 인건비를 포함한 수수료로 인해 거래액이 늘어난다. 실제로 이용자들이 버는 돈은 더 줄어들고 지출만 증가한다. 배민이 출시되고 나서 음식값, 배달비, 자영업자광고비는 올랐다. 중개수수료로 먹고사는 스타트업은 그저 버블만 키울 뿐이다. 그 버블을 성과로 포장해서 VC들에게 돈을 뜯어낸다.
사업규모가 늘고 이용자가 증가하면 인건비, 운영비, 광고비 같은 부대비용을 이용자들에게 떠넘긴다. 수수료를 올리면서 허울뿐인 명분을 내세운다.
겉만 번지르르한 깡통이라도 평가액과 몸값을 부풀려주는 투자자들이 있다. 학연과 지연으로 만든 업계의 카르텔은 해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있다. 든든한 우군과 함께 짜고 치는 고스톱은 버블을 더 크게 만든다. 그러려면 포장은 필수다. 마케팅 포인트가 될 만한 것을 골라 세일즈에 집중한다. 이름값은 추가투자로 이어진다. 당연히 기술개발은 뒷전이다. 스톡옵션을 미끼로 직원을 뽑고 고강도 노동으로 퇴사하게 만드는 악습도 여전하다.
한국은 챔피언을 상대로 도전하려는 스타트업이 적다. 시장지배자와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비싼 값에 지분을 사고 투자금을 줄 잠재 고객으로 여긴다. 넘어설 능력도 없고 넘어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승할 생각이 없는 경주마에 돈을 거는 사람은 없다. 코로나 전후로 스타트업을 인수했다가 재미 보지 못한 대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줄여버렸다. 차라리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해외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됐다. 검증된 기술력과 대외경쟁력을 가진 글로벌스타트업에 돈을 대려고 한다. 스타트업에 돈줄이 마르는 진짜 이유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결국 내수용이다. 플랫폼으로 수수료를 뽑아먹는 방식으로 몸값을 올려봐야 해외에서 인정해주지 않는다. 모기처럼 이용자들을 빨아먹으면서 눈먼 돈으로 엑시트를 꿈꾸는 장사치나 양아치는 티가 난다. 인구절벽이라는 늪에 빠진 대한민국에서 서로 점유율 갈라먹기만 하는 기업이 경쟁력이 있을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스타트업은 포장하지 않아도 잘 성장한다. 다만, 그런 진짜배기들은 정말 극소수다. 원천기술력을 가진 ‘진짜’들은 글로벌 VC들이 알아보고 투자한다. 사짜들이 아무리 포장하고 치장해도 돈은 늘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사람은 속여도 돈은 못 속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