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Dec 07. 2024

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른아이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는 글로 쓴다. 말하는 것만큼 쓰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용기를 냈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서 과거를 헤집어봤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내려앉는 괴로운 장면들이 보인다. 제대로 마주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그래도 더 이상 외면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불혹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지만 지나간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일은 힘들다. 성장기에 발생한 심리적인 문제는 평생에 걸쳐 사람을 괴롭힌다. 제대로 풀지 못하고 던져둔 채 나는 그대로 어른이 됐다. 커다란 자물쇠를 걸어놓고 도망쳤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 살았는데 틀렸다. 시간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마취제다. 잠시 무뎌졌을 뿐 고통은 흉터 아래 생생하게 살아있다. 성장기에서 문제가 비롯되었다면 문제를 푸는 단서도 과거에 남아있지 않을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시간 대신 세월이라는 이름을 써야 할 만큼 과거로부터 멀어졌다. 하지만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나는 혼자였다. 학교, 친구, 친척 어느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가슴속에 담아두고 지내다 몰래 감정을 삼키느라 고통스러웠다.


 어디에서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차가운 방 한구석에 이불을 덮어쓰고 울다 잠들던 어린아이.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하고 울음을 삼켰던 그때가 생각났다.

나는 어떻게 버텼던 것일까? 정말 고통스러운 기억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떠올릴 수 없는 과거는 내가 살려고 잘라낸 아픈 기억들이다. 친구들과 놀다 집에 가면 혼자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도서관이 문 닫을 때쯤 나와서 터덜터덜 느린 걸음으로 집에 온다. 오래된 대농단지의 골목길, 지금은 사라진 덕천마을의 낡은 차로변을 축 처진 어깨로 걷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떼쓰고 싶었다. 싫은 건 싫다고 이야기하고 화내고 싶었는데 화를 낼 수 없었다. 소리 지르면서 원망하고 맘껏 미워하고 싶었는데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다. 언젠가는 말할 수 있을까? 마음을 터놓고 나는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람에 따라 기억은 다르게 작용한다. 누군가는 세월에 의해 기억이 희석된다. 반대로 누군가는 어제 일처럼 선명한 기억을 품고 산다. 너무나 또렷하고 날카로워서 손을 데면 베일 것 같다. 그래서 건드리지 못하고 가끔씩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덮어놓고 세월을 흘려보냈다.


 군데군데 지워지고 사라진 기억을 조각모음해서 끄집어낸다고 과거는 달라지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에 눈물과 진심이 담겨있을지라도 흘러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용서보다 체념이 빠르다. 우는 아이는 초등학교를 고학년이 되기 전에 이미 어른아이가 됐다. 현실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다. 내 상황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갖고 싶다는 말이나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삼켰다. 처지라는 단어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에 이해했다. 급식비가 밀려서 친구들 앞에서 담임선생님의 호통을 들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울분이나 분노 그리고 억울함까지 전부 속으로 삼켰다.


 나는 납득하는 아이가 됐다. 공장에서 잔업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수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이 멀리 떠난다면 엄마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옆에 남았다. 엄마가 불쌍해서 힘든 엄마를 외면할 수 없어서 곁을 지켰다. 어린 시절 내 기도는 항상 빗나갔다. 소박한 희망이나 간절한 소망은 늘 실망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아팠을 때나 우리 교회가 폐업했을 때나 아빠가 송사에 휘말렸을 때나 늘 똑같았다. 초등학생의 작은 바람도 기복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좌절을 통해 단념과 체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익혔다. 섭리라는 단어는 신기루처럼 아주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세상의 주인공인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을 닫은 적은 없지만 문을 활짝 연 적도 없었다. 지금도 종종 기도를 한다. 이제는 거절당해도 아프지 않을 만큼만 마음을 담는다. 고통에서 배운  경험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한 번씩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내면 깊은 곳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랬다. 중학생이 돼서 내 안에 남아있는 초등학생 시절의 나를 다독였다.


 어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버틸 것 같았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 안에 우는 아이가 살아있다. 한동안 외면하고 살았다. 다 괜찮아졌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고 회피했다. 이제는 정말 과거를 마주하는 연습을 시작해야 할 때다. 마음의 문에 걸린 자물쇠를 여는 열쇠를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