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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6. 2024

이야기할 때마다 고통은 줄어든다

 상처는 덮어놓고 가만히 놔두면 더 깊이 파고든다. 오히려 인정하고 자기 입으로 표현할수록 통증이 줄어든다. 트라우마도 비슷하다. 무섭고 두려워서 가슴 깊은 곳에 봉인해 둔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 크고 무겁게 변해서 영혼을 짓누른다. 괴로움을 끌어안고 지내면 삶은 사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견디는 시련이 된다.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는 행동이 아픔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 앞에서 표현할 때마다 고통은 희석된다. 거대한 바위 같은 트라우마가 조금씩 깎여나간다.


 손톱만 한 작은 조각이지만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이야기는 치유력이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도 힘을 주지만 회복하는 진정한 힘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나온다. 아픔을 밖으로 드러내면서 내면의 힘을 회복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진솔하게 드러내는 일은 회복으로 가는 좋은 지름길이다. 오래된 지인들에게 말하는 것도 좋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이들을 모아 모임을 만드는 것도 괜찮다. 말이 어렵다면 글로 써서 온라인 공간에 올리는 방법도 있다. 나도 내 안에 담아놨던 감정을 이렇게 글로 쓰고 있다.


 이야기할 곳을 찾아서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삶은 분명히 회복된다. 스타강사나 유명인들 중에 자신의 상처를 대중 앞에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조회수를 늘리는 콘텐츠나 이목을 끄는 소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 앞에 이야기하면서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고통을 덜어낸다. 역설적이게도 고통은 감출수록 아프지만 표현할수록 점점 나아진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행동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끌어올려준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말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효과가 있다.


 꾸준히 그리고 자주 표현하다 보면 고통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회복력은 면역력을 토대로 형성된다. 아픔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계속 표현하는 것도 용기다.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고 상태를 확인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서 나를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고 객관적으로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완벽한 정답은 없다. 좌절하고 실망하더라도 계속해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을 치유하는 행위는 일종의 인디언기우제다. 될 때까지 하면 어떻게든 된다. 적어도 이전보다는 좋아진다.


 문제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억눌려있다 터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을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갑자기 좋아지거나 단 번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단거리경주로 치부하면 실망감만 남는다. 조급함을 버리고 장기전으로 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이므로 해법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마라톤으로 여기고 나만의 페이스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삶을 말하기까지 20년 넘게 걸렸다. 표현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아픔도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 많은 창작자들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장 어렵고 제일 힘든 것은 인정하는 일이다. 특히 처음이 정말 어렵다. 큰 맘먹고 용기를 내더라도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좌절한다. 첫발을 내딛으면 변화가 시작되지만 용기를 잃고 문 앞에서 돌아서게 된다. 문 안쪽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은 얼마나 많이 망설이다 좌절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마법처럼 단 번에 나아지는 것은 없지만 첫발을 내딛는 순간 변화의 가능성이 걸음을 따라온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어렵게 입을 뗐다. 어색함을 떨쳐내고 과거의 그늘 아래 숨겨놨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냈다. 이야기할 때마다 내면의 거대한 바위가 깎여나간다.


 0.01은 정작 작지만 0보다 1에 가깝다. 말하지 않으면 가능성은 항상 0이지만 용기를 내서 표현하면 1에 가까워진다. 그러다 보면 1은 10이 되고 50을 넘겨서 언젠가 100을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 시작은 가능성을 0에서 1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시작은 그냥 시작이다. 수식어가 붙지 않는다. 늦고 빠름은 말장난일 뿐이다. 시작하면 변화는 따라온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상대성이다. 다양한 변수가 흔한 상수를 뒤집는다. 그러므로 의미 없는 시도는 없고 가치 없는 시작도 없다. 도전을 시작하면 변화도 함께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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