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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5. 2017

폭력의 언어

사회의 수준이 곧 국민의 수준이다

 살면서 가장 추운 12월을 보내고 있다. 예년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 추위로 월요일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를 기록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창문을 열어 밤새 탁해진 공기를 환기시키려던 나는 창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꽁꽁 얼어붙은 12월 둘째 주의 첫날을 찬바람 흠뻑 맞으며 시작했다. 뉴스를 틀자마자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대한 내용들이 이어져 나왔다. 감기 환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부모님 생각이 났다. 지난 해 겨울에 사드렸던 파카보다 좀 더 두껍고 따뜻한 패딩을 장만해 드려야겠단 생각에 아침부터 핸드폰을 손에 쥐고 쇼핑을 했다. 
  
 이번 겨울 최고의 유행아이템이 롱패딩이라서 그런지 온라인 쇼핑몰마다 다양한 브랜드의 롱패딩들이 또렷한 존재감을 뽐내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트렌드란 건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 운동부 아이들이 겨울에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침낭 같은 옷이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한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신기하다. 정말 따뜻한지 후기라도 찾아볼 겸 포털 사이트에 롱패딩을 검색하고 보니 롱패딩 유행에 대한 기사들이 제법 많았고 그 아래에는 많게는 1000개가 넘어가는 댓글들이 가득 달려 있었다. 매년 겨울을 크게 유행했던 옷을 다룬 인터넷신문의 특집기사는 교복이라 불렸던 아웃도어브랜드의 패딩을 잇는 다음 주자로 롱패딩을 꼽았다.
  
 천 개가 넘는 댓글 중에서 가장 많은 추천수를 받은 1위는 ‘유행이 아니라 따듯해서 입는다.’는 내용이었고 그 아래 2위는 ‘옛날부터 있었는데 그때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이제 유행하니까 입는 거 아니냐.’는 반박이었다. 추천 수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올라와있는 나머지 댓글 역시 위의 내용을 보충하거나 공감한다는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 비판이 아닌 비난과 비아냥거림이 가득한 댓글들을 읽고 있자니 이게 그렇게 서로 갈라져서 싸우고 욕을 할 정도의 내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유튜브로 음악을 듣고 있다 아래 달린 댓글을 읽었을 때도 동일한 인상을 받았었다. 누군가 일방적인 비난의 의도를 담은 댓글을 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반박하며 댓글에 댓글을 길게 달아가며 서로 싸우는 행렬. 심지어외국인이 올린 영상에도 한국인 네티즌이 서로 싸우는 댓글을 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기사나 영상 그리고 포스팅 된 내용과는 상관없이 댓글로 싸우는 상황을 온라인상에서 흔하게 목격한다. 성별과 연령의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서로를 욕하고 질타하는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익명성이 강조된 온라인 공간도 엄연한 생활 영역인 현대 사회에서 다툼이나 의견충돌은 의사소통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겠지만 한국은 좀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임과 동시에 영혼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대화하는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만으로 실생활에서는 입에도 담지 못할 폭언과 욕설을 늘어놓는 사람들. 그들이 모두 어디가 잘못된 비뚤어진 인격의 소유자일까? 
  
 악성 댓글을 달다가 소송에 휘말려 법정에 선 사람들은 평범한 학생이거나 성실한 사회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어떤 특정한 신경정신과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정서적인 문제로 이를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사회에 대한 불만, 익명의 가면을 쓰고 맘껏 내뱉는 해방감 같은 것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댓글싸움을 부추기는 원인인걸까.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불만이나 스트레스는 분명 상당한 수준이겠지만 그것만가지고 온라인 공간에서 무차별적인 폭언을 광범위하게 일삼는 현상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이 문제의 핵심은 발언의 무책임성과 폭력적인 언어 사용이 갖는 윤리의식의 부재다. 자신의 표현이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연스럽게 연관 지어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지키지 못하거나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쏟아 내고는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 자신의 발언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오리발을 내밀던 사람들. 책임과 모범을 보여야할 자리에서 폭력과 폭언을 일삼던 사람들. 발언의 사실 유무에 관계없이 일단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구설수에 오를 만한 실언으로 물러났다가 슬그머니 돌아와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나가는 사람들. 반드시 지키겠다며 지지를 호소하더니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는 돌아서버린 사람들. 인격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할 지위임에도 저급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 치명적인 말실수로 발목을 잡혔음에도 아무 문제없이 떵떵거리며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사는 사람들. 한국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자주 접할 수 있는 이러한 현실은 책임감 있게 언어를 사용해야한다는 윤리적인 상식을 보기 좋게 망가뜨려버린다. 
  
 사회의 수준은 국민의 의식수준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사회를 이끌어나가고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언어의 수준과 윤리적인 책임의식을 지속적으로 망가뜨렸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부정적인 의식은 암세포처럼 다양한 연령층에 고르게 퍼진다. 모범적인 선례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우리 사회의 언어 사용에 대한 인식이 온라인 공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온라인 공간도 사람들이 생활하는 현실의 영역이다. 인정과 배려가 없는 삶의 터전에 발전과 번영을 만들어내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작은 영토 안에서 서로 싸우고 편을 갈라 대립하는 한국 사회. 현실에서도 온라인에서도 통합과 화합은 갈 길이 한없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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