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클리셰(프랑스어: cliché, 발음: [klɪ'ʃe])는 남용의 결과, 의도된 힘이나 새로움이 없어진 진부한 상투구, 상투어·표현·개념을 가리키며 상황, 줄거리의 기법, 주제, 성격 묘사, 수사법 등 흔히 있던 것이 되어 버린 대상(요약하면, 기호학의 사인)에도 적용된다. 부정적인 문맥으로 사용되는 것이 많다. 드라마에서 관례처럼 빈번하게 사용되는 진부한 줄거리 또는 진부한 연출 등에도 쓰인다.
만물박사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나오는 클리셰의 정의다. 쉽게 말해 드라마, 영화 등의 매체에서 백날천날 우려먹는 표현, 캐릭터, 줄거리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클리셰를 파괴하는 이야기면 일단 어느 정도 호의적으로 반응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정말 솔직하게도 진부한 클리셰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클리셰를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글자라는 것을 제대로 사용하기 전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중 호응이 좋은 것들만 텍스트의 형태로 진화, 생존했다. 그러니까 클리셰는 재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먹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작가들이 클리셰를 진부할 정도로 우려먹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먹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돌아갈 이유는 전혀 없다. 이미 증명된 성공공식이 있는데 굳이 불필요한 실험을 하다가 배 곯을 필요는 없다.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비판 정도는 감수해도 괜찮으니까.
나는 천 가지 발차기를 한 사람은 무섭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한 사람은 무섭다
배우이자 무술가였던 이소룡 역시 궤를 같이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리 진부한 한 가지 방식의 이야기라도 그것을 만 번 갈고 닦으면 그만한 명품도 잘 없다는 것이다. 클리셰는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갈고 닦으면서 검증의 과정을 거치면서 벼려낸 명검 같은 것이다. 잘만 사용한다면 그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력은 오늘날까지도 유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로맨스 장르의 드라마와 영화 속 여자 주인공들은 여전히 가난하면서 꼭 과거의 왕자님을 연상케 하는, 잘생긴 재벌 집 도련님 같은 남자 주인공들과 이어진다. 솔직히 현실 속에서 있기도 어려운 일이고, 어릴 적부터 지겹도록 본 이야기지만 여전히 잘 먹힌다. 왜 그런지 알아보는 건 다음 시간에 알아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낡아 보이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전히 잘 먹힌다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꼭 돌연변이 같은 반골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꼭 이러한 클리셰에 거부감을 느끼고 꼭 이리 저리 비틀려는 부류들도 있었다. 잘만 풀리면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부류들이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마르고, 그러한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부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리셰를 깨는 것 역시 클리셰에 대해 잘 알고 활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깰 수 있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부수고 보는 행동의 끝은 대부분 좋지 못했다. 문학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그랬다. 옛 것을 부순다는 부르짖음에 사로잡혀 사리분별 없이 최악의 결말로 달려갔다는 점에서 무리한 클리셰 파괴는 문화대혁명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정도를 비켜가며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겠지만 애초에 정도가 왜 정도인지를 모르는 유치한 발상일 뿐.
최근 완결된 최훈 작가의 카카오페이지 웹툰 <프로야구생존기>에 나오는 대사이다. 정석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정석을 벗어나려고 억지를 부리면 그 결과는 대부분 좋지 못하다. 마지막에 엉뚱한 결말을 내면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는 드라마나 만화, 영화의 상당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문화대혁명처럼. 그래서 아직도 클리셰라는 질긴 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결론은 없다. 좀 두루뭉술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도록 하자. 일단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다 보는 것이 나한테는 먼저다. 나 자신과의 선약은 중요하니까.
P.S.-이렇게 보니까 내가 신데렐라 스토리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대한민국에 왕자와 귀족 같은 게 어디 있나? 1894년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신분제는 사라졌다. 실질적인 사람들의 인식을 감안해도 6.25 전쟁 이후에는 신분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지지 못한 것이라 더 갈망하는 걸까?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는 2025년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인기다. 개인적으로 유쾌하지는 않다. 물론 내가 그 잘난 상류층이 아니라서, 배알이 꼴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다루는 인어공주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말을 못하면 다른 의사소통 수단이라도 좀 활용을 해야지, 그냥 물에 몸 던지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인간(엄격히 말하면 인어)가 너무 무기력하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법인데 몸뚱아리의 반은 인간이면서 쥐나 지렁이만도 못한 행보를 보여주니, 좋아하기 힘들다.
뭔 놈의 불평불만이 이리 많냐고? 불평불만이 아니라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일 뿐이다. 취향은 죄가 아니지 않나. 그럼 뭘 좋아하냐고?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을 좋아한다. 모름지기 사람이면 적어도 자기 의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뮬란은 여자의 도리를 다하라는 어머니의 말은 가볍게 쌩까고 아버지 대신 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고, 전투를 치른다. 본인의 의지와 신념을 위해 부모의 말도 가볍게 무시하는 긍지가 뮬란이라는 캐릭터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주인공이라면 이 정도 호방함과 패기는 있어야 한다. 비록 나는 뮬란 같은 호방함이나 패기 따위는 없는 ‘하남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이 아니지 않나. 한 이야기의 주인공쯤 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면 요구되는 소양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고작 사회적 환경이나 동조 압력에 굴복하는 인간상 따위를 보려고 비싼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얼어 죽을 도서정가제, 빌어먹을 영화 티켓 가격을 생각하면 주인공이라 하면 모름지기 그 어떤 두려움에도 맞서 싸울 준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돈을 그렇게 썼는데 그 정도도 못하면 그건 직무 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