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제1 법칙,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위협
갑자기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중고로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를 샀습니다. '엔트로피'라고 하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용어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렵다기보다 이렇게 쉽게 내용들을 설명해 주는 작가와 번역가의 역량에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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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저자는 미래학자처럼 역사와 철학, 과학을 믹스하여 미래에 대한 세계를 쉽게 설명합니다. 제레미 리프킨 책의 저서 중 "age of access, 소유의 종말"이란 책은 아직도 매우 큰 인상을 준 책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레미 리프킨의 통찰력에 늘 놀랍습니다.
이 책을 읽으실 때
'엔트로피' 용어를 먼저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할 듯합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열역학 제2법칙은 에너지와 물질은 유용한 것에서 무용한 것으로 변환된다라는 이론입니다.
이 두 법칙에 의하면 에너지의 총량은 변화지 않지만 에너지와 물질을 사용할수록 유용했던 에너지는 사라지고 무용한 물질로 변해 간다는 의미가 되고 이에 따른 무용한 물질, 쓰레기가 엔트로피라고 말합니다. 엔트로피가 증가된다는 것은 그만큼 유용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고 지구에서 쓸 수 있는 에너지는 계속해서 감축된다는 말이됩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이 열역학 제1법칙뿐이라면 에너지가 고갈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석탄 한 조각을 태운다면 태우기 전과 태운 후의 에너지 총량은 같겠지만 일부는 아황산가스와 기타 기체로 바뀌어 대기 중으로 흩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에너지는 없지만 이 석탄 한 조각을 다시 태워서 같은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열역학 제2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
제2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에너지는 한 가지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이 벌금은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다. 그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이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에너지는 지속적으로 질서에서 무질서로 전환됩니다. 진보라는 것은 성장을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입니다. 자급자족의 사회에서 농경사회가 되고 증기기관이 발달하며 교통과 기계적 기술이 향상되고 전기가 생산되면서 에너지는 더욱 필요하게 됩니다.
IT 문명은 전기의 사용량을 기하급수적으로 증대시키고 차량의 증가는 오일의 수요를 증대시켜 왔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에너지의 총량을 변화시키지 않지만, 에너지는 유용한 것에서 무용한 것으로, 질서에서 무질로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이 책의 핵심 주제입니다.
결국 지구는 성장과 진보의 관점, 기계론적 관점으로 접근을 하면 엔트로피가 증가해서 지구의 환경은 파괴된 상태로 회복 불능 상태가 된다는 경고를 합니다. 쓸모없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자연에서 주는 에너지를 활용하며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것을 늦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간은 불가역성이 존재하지만, 속도는 자유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며, 지구공동체의 생각으로 엔트로피를 줄여가기 위해 인간들은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어떤 사회에서든 권력은 에너지를 변환, 교환, 폐기하는 신체 외적 도구를 통제하는 사람이 장악한다. 계층의 분화, 착취, 특권, 빈곤 등은 모두 한 사회의 에너지 흐름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신체 외적 도구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에너지 흐르을 통제 한다. 이들은 사회라는 테두리에서 어떻게 일을 배분할 것인가 결정한다.
하지만 현시점의 정치 지도자들은 오히려 그와 반대로 역행하는 정책들을 펴고 있습니다. 자국 우선 주의에 의한 자연친화적 행동 지침들을 던져버리고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여 진보적 발향과 발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가려는 힘을 늦추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지구공동체라는 의미를 찾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정책도 친환경은 무시하고 자국 위주의 발전만을 고집하며 불도저처럼 극우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중심 세력이 없이 서로를 물고 뜯어야 하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다시 회기하는 듯 합니다.
제레미 리프킨이 1980년 출간했던 엔트로피의 저감에 대한 경고가 2025년의 이 시점에도 적용되는 말이며 세상은 그때보다도 기계론적 사고가 더욱 커져만 가는 듯 합니다. AI도 그 부분의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오래된 책이지만 과학적 이론을 역사적 통론으로 설득하고, 그에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우리가 해 나가야 할 것들을 40년 전에 이야기 한 책이라는 게 놀랍기까지 합니다.
엔트로피를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리 적용해 보면, 인간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어머니로부터 저 엔트로피를 받으면 자라지만 태어나서 지속적으로 엔트로피를 쓰며 성장하게 됩니다. 결국 엔트로피가 사라지는 시점은 죽음에서야 가능합니다. 죽음은 에너지가 평형을 유지하는 상태이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키지 않게 됩니다.
환경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공동체라는 형태를 인정할 때 개선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을 최소화 하는 현실적 방법이지 아닐까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적어도 자급자족적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는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고, 오락도 남의 힘을 빌려야 하며, 옷도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어른이 챙겨줘야 하는 불쌍한 어린애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