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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여행이 되는 순간, 여행이라는 것!

낯섦과 익숙함 사이,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다.

by WOODYK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저>



어딘가 멀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 사람들은 낯선 환경을 찾아 떠난다. 떠나기 전부터 설렌다. 지금과는 다른 곳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낯선 순간들을 즐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행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곳은 그저 일상이다. 그들에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 여행자에게는 신기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별것 아닌 풍경에 감동해 사진을 찍고, 별것 아닌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우리의 일상에도 있는 평범한 것들이 낯선 여행자에게는 대단해 보일 것이다.


결국 여행은 낯섦과의 만남이다. 낯섦에서 오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우리를 떠나게 만든다.


그런데 여행은 역설적이게도 익숙함을 즐기기도 한다. 익숙하다는 것은 편안함이다. 불편함이 적어지는 환경을 우리는 익숙하다고 부른다. 낯섦이 불편하고 어색하다면, 익숙함은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여행지에서 늘 해왔던 것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면 반갑다. 편안하게 그 환경을 받아들인다. 낯섦의 불편함 속에서 잠시라도 익숙함의 편안함에 머물고 싶어진다. 외국에 나가면 자국 제품을 보며 반가워하고, 자국 음식이 그리워진다. 굳이 외국까지 와서 자국 음식을 먹어야 하나 싶지만, 한 끼쯤은 익숙한 맛을 찾게 된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편안한 이유는 일상 속에서 늘 보고 즐기던 곳이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익숙함에 끌리는 것이다.


여행은 그렇다. 낯섦의 설렘과 익숙함의 반가움이 교차한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을 즐기고 설렌다. 하지만 멀리 가는 여행만이 여행은 아니다. 자국을 둘러보는 여행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문득 생각이 나서 금요일 저녁에 차를 몰아 속초 바다를 보고 맛있는 회를 먹고, 하루를 보낸 후 아침 해돋이를 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짧은 여행도 설레고 즐겁다. 속초가 낯선 환경일 수도 있지만, 자주 찾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다.


사계절의 여행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우리의 자연은 늘 때가 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자연이 돌아온 자리에서 우리는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고, 자신이 조금씩 성숙해 간다는 것을 느낀다.


일 년은 여행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은 자신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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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변화하는 것을 일상 속에서 느끼며 우리는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떠나지 않아도 자연은 자연스럽게 시간을 여행할 기회를 제공한다. 멀리 떠나 낯섦에 기뻐하고 익숙함에 놀라는 짧은 여행이 아니라, 일 년이라는 여행은 잔잔하지만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긴 시간의 축적이다.


사계절의 여행을 하루로 축소하면, 하루도 여행의 일부가 된다. 새벽, 아침, 저녁 그리고 밤, 다시 새벽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일상이 우리에게는 여행이다. 하루에 일어나는 일들은 반복되는 듯 하지만, 그 하루는 우리 삶 속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최초이자 마지막 여행이다. 낯섦의 미숙함과 익숙함의 편안함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멀리 해외로 낯섦을 만끽하는 것도 여행이지만, 하루하루 일상 속에 살아가는 것도 여행이다. 여행에 범위란 없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자신과의 여행이다. 혼자라는 시간을 즐기고 책 속에 감정을 실어 어디론가 떠나는 느낌이라면, 그것 또한 여행이다.


여행만이 여행이 아니다.


일상이 여행의 연속이다. 자연이 주는 환경이 우리를 여행의 중심으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의 확장은 모든 것을 설레게 하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어딘가 멀리 일상을 벗어나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여행일 수 있다. 새싹이 돋는 봄의 설렘을 여정이라 하고, 풍성한 푸르름이 존재하는 여름을 여유라 표현하며,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가을을 여운이라 말하고, 눈이 내리는 겨울의 수묵화를 여백이라 한다면, 이 모든 시간이 우리에게는 여행이 된다.


삶을 살다 보면 하루하루, 일 년 그리고 모든 시간이 여행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일상의 하루가 별것 아닌 듯하지만, 이 시간들은 매우 소중한 우리의 여행 시간이다.


낯섦과 익숙함이 섞여 매일 다른 하루를 살아도 우리는 그것에 설레지도, 감탄하지도 않는다. 너무 익숙하다고 쉽게 여기고 아무것도 아닌 듯 흘려보낸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가고, 자신도 자연 속의 일부분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하루하루의 여행을 가볍게 본 것을 후회한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저>




여행은 그런 것이다.


끝나갈 때쯤 아쉬움이 남고, 떠날 때의 설렘보다 돌아올 때의 버거움이 더 크다. 설렘의 기운이 끝까지 가지 못하는 이유는 다시 일상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꼭 멀리만 떠날 필요가 없다. 혼자 보내는 시간의 여행, 하루를 낯설게 만들어주는 환경에서의 여행,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느끼는 여행, 회사에서 동료들의 미소를 만나는 여행 등 수많은 여행이 존재한다.


떠날 때의 설렘과 돌아올 때의 무거움이 없어도, 소소하지만 하루의 시간을 감탄할 수 있고 생각의 확장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여행의 연속이다.


여행의 진짜 의미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 모두 여행이다라는 생각의 확장이다. 어디를 떠난다는 고정관념의 여행이 아니라, 생각의 확장이 주는 다양한 여행을 즐기는 것이 진짜 여행일 수 있다.


여행은 우리 삶 속에 이미 녹아 있다. 시간이 없어 멀리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보다는 일상의 여행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감탄한다면 우리는 이미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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