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그곳에 부모님이 살아 계십니다.
잠을 뒤척이는데 새벽에 형에게 문자가 왔다.
"새벽에 잠이 깨서 쉽게 잠들지가 않네. 벌써 2시간 정도 뒤척이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이제껏 살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도 다시 그려보고… 가장 그리워지는 게 어렸을 적 엄마하고 행복하게 보냈던 날들인 것 같아. 지나고 나면 항상 미련이 남고 그리움만 남아. 겨울밤이 너무 길어. 어릴 적에는 추워도 눈 오는 겨울이 좋았는데 나이 먹을수록 따뜻한 여름이 좋아지네."
회사 일로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숙소에 돌아오면 일에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어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본다. 그러다 잠이 들고 새벽에 다시 깨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럴 때면 다시 잠들기 어려워 책을 읽다가 잠시 잠들고, 다시 회사 나갈 준비를 한다.
추운 날씨에 이불속에 꼭 있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불이 커진 방에 누워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그리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난다. 휴대폰 속에는 아직도 엄마와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이미 그 번호는 누군가의 새로운 번호가 되었지만, 아쉬움이 남아 아직 지우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 겨울은 정말 지금보다 더 추웠던 기억이 난다. 추워도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며 하루를 보냈다. 양말 두 켤레를 신고 털장화를 신고, 몸에는 두꺼운 내복을 입고 단단히 중무장한 상태로 나가 썰매도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뛰었다.
친구네 집에도 놀러 가서 할 일이 없어도 같이 웃으며 놀고 이야기하던 그 시간이 그립다. 그 어린 시절의 겨울은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보낸 듯하다. 그리고 늘 엄마를 부르며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부엌에서 일을 하시면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러면 겨울은 춥지 않았다.
아침에 깨어 창문을 열면 참새 소리가 들리고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미 어머니는 일어나 군불을 지피고 계셨다. 추운 겨울에 얼굴 씻을 따뜻한 물을 데우고, 가족들이 먹을 흰밥과 반찬을 준비하셨다.
부엌은 초라해서 외풍이 있었고,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부엌을 감쌌지만 어머니는 그런 추위를 견디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작은 몸으로도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 하루였을 것이다.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자신의 몸의 에너지를 늘 자식들에게 나누어주셨다.
연세가 드시고 그때의 에너지가 사라진 후, 병원에 누워 계시며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자식들을 바라보셨다. 오히려 연세가 드시고 아픈 몸을 잊고자 남은 시간을 책을 읽으시며 자신의 마음을 달래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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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며 정신없이 살아간다. 하루하루 치열하기도 하고 바쁘게 돌아간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지금의 모습도 보여드리지 못하며,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도 드리지 못하는 지금의 시간이 아쉽게 다가온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자식을 그리워하셨지만, 그 그리움을 채워드리지 못한 시간이었다. 어릴 적은 어머니가 우리의 시간을 채워주셨지만,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어머니의 시간을 채워드리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늘 아쉽고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형이 문자를 보내거나 틈이 생기면 여지없이 부모님 생각이 가슴을 뒤흔든다.
형이 새벽에 보낸 문자를 보며 가슴 한구석이 시리고 아프기까지 하다. 미소 짓던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늘 울타리처럼 우리를 안아주셨던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이 그립다. 춥지만 춥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겨울이 그립다.
지금의 겨울은 그때보다 춥지 않다. 하지만 왜 이리 더 춥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형이 말한 듯 추운 겨울이 부담스러워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생각해 본다. 이미 나이가 들었고 들어가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일조량의 영향도 기분을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나이가 들수록 정말 추운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겨울이란 계절은 반드시 돌아오지만, 어린 시절의 겨울과 지금의 겨울은 느껴지는 온도가 너무 다르다. 이젠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키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따뜻함은 잊히지 않는다.
며칠 전 후배가 준 감을 책상에 놓고 바라보다 울컥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감이었는데, 자주 사드리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내왔다.
전화 속에 들리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들린다.
"잘 있니. 이번 주말에는 바빠서 못 오지?"
늘 자식들을 그리워하셨지만, 자식들의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까 봐 먼저 '바빠서 못 오지'라며 그리움을 전화 속으로 감추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간혹 보고 싶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무덤에 가서 인사를 드리지만, 그건 잠시 나를 위한 위안일 뿐 그리움의 해소는 되지 않는다. 형과 누나와 옛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리웠던 시절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부모님이 안 계신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멋있기도 하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리운 시간들이 다가올 시간의 기대보다 더 많이 쌓여가는 듯하다. 설렘의 기운보다는 그리움의 감정들이 커져만 간다.
나이 들어감은 분명히 간직했던 추억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 주변의 환경은 변해가고, 시간이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어느새 부모님이 어린 꼬마들을 돌보던 때가 흘러가고, 어엿한 중년이 된 시간으로 흘러왔다.
철부지 어릿 쟁이가 의젓한 어른이 되었지만, 부모님을 생각할 때는 늘 어린 꼬마가 생각난다. 그립고 아쉽고 사랑스러운 부모님이다. 특히 겨울이 부모님을 소환해 마음을 흔들러 놓는다.
형도 누나도 세월이 흘러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 나이가 들어가는 계절이 꼭 겨울 같아서 그런지, 추운 겨울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나 보다.
지금 곁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면 한 번이라도 손을 잡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해드리고, 볼에 키스를 해드리고 싶다.
"지나면 아무 의미 없다"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행복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머니의 말씀을 그리워만 한다.
추운 겨울, 부모님 곁이 그리워지는 새벽이다.
형에게 문자를 보낸다.
"형, 나도 부모님이 그립네. 어릴 적 놀던 그 시절. 엄마가 해주시던 따뜻한 흰밥, 그 위에 김치. 밖에서 놀다 엄마를 부르면 부엌에서 엄마의 인기척이 들려 마음의 안심을 하던 그 시절. 이제는 겨울이 나도 별로야. 춥고 밤도 길고… 햇볕의 영향도 있지만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나 봐.
그래도 우리 형제자매가 서로에게 엄마와 아빠잖아. 이렇게 키워주신 부모님이 계셔서 우리가 지금 있으니 허투루 살지 말자. 하루하루 감사하게 감탄하며 살자. 아쉬움도 많이 남고 그리움도 커지지만, 그게 나이가 들며 생기는 자연스러움일 거야.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시던 감을 보며 부모님께 고마워할게. 형도 오늘 감사하며 감탄하며 살아. 좋은 하루 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