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오프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다리멍 살아라. 사랑도, 행복도, 언젠간 온다. 사는 게 힘들어도, 하루하루 쌓이면 그게 인생이여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 속 대사>
두꺼운 책을 읽다 보면 지루한 부분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의 절반을 읽게 되고, 반을 넘기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다른다.
수많은 글자가 모여 만든 책은 지루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귀찮고 어느 때는 읽기가 힘들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옆에 있을 때는 책의 귀찮음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휴대폰의 즉각적 반응에 빠지게 된다.
휴대폰 화면에 나오는 현란한 영상들과 대화들은 뇌를 움직이며 읽어야 하는 활자로 만들어진 책들을 멀리하게 만든다.
인간의 뇌는 지루하고 귀찮은 일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편안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선호한다.
그만큼 에너지 소진을 적게 하는 것을 뇌는 선호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번거롭고 뇌의 에너지를 쓰게 만드는 지루하고 귀찮은 일인 것이다.
옛 어린 시절, 기다린다는 것, 인내한다는 것은 일상이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어도 주말을 기다리며 텔레비전에서 방영해 주는 외화를 볼 수 있었고, 추운 겨울에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도 공중전화에 줄을 서고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운 수순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싶으면 라디오에 손 편지를 써서 사연을 보내고 추첨되기를 숨 죽이며 기다리던 기억도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CD가 발매되기만을 기다리며 레코드 가게에 줄을 서서 즐거워했던 적도 있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한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날이 오기까지 씨네 21 잡지 속 영화 이야기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영화관 앞에는 친구와 연인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운집해 있고, 영화 상영 전까지 주변의 빵집이나 커피숍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지하철에는 책과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지루한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채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개근상이라는 게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1년 동안 학교를 나오면 어떤 상보다 위대한 상으로 치부되기도 했었다.
그걸 6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면 그것만큼 위대한 것은 없었다. 아파도 부모님은 학교는 무조건 보냈다. 개근상은 근면의 기본 습관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지루함과 번거로움, 귀찮음. 이 모든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옛 시절은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다리고 지루함이 수반되었다. 그때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떡을 하러 방앗간에 가면 먼저 오신 손님들과 이야기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고, 5일마다 진행되는 장터를 기다리며 집안 살림을 하고 있으셨다.
집 전화 시대에서 삐삐가 등장했을 때도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 것에 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삐삐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삐삐에 찍히는 문자를 보고 다시 공중전화를 찾아 연락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고 즉각적 보상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지루하고 귀찮은 과정, 기다리고 버텨야 하는 과정은 사라지고 있다. 인내라는 말은 듣기 힘든 세상이다.
사람들은 조급해지고 즉각적 보상을 원한다. 책이라는 활자를 귀찮아하고 스마트폰의 숏츠를 원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기다리기보다는 스마트폰의 수많은 곡을 즉각적으로 선택하고 싶어 한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몇 주를 기다리기보다는 스마트폰의 OTT 속에 나오는 수많은 영화를 즉각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선호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기보다는 보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바로 다른 영화로 돌려버리는 즉각 반응을 선호한다.
지하철의 지루함을 책보다는 숏츠로 대체하고, 친구들을 기다리는 시간보다는 혼자서 스마트폰을 보며 비대면을 선호한다.
엽서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지루함보다는 SNS를 통해 즉각적 반응에 열광하고, 남녀의 사귐을 위해 서로를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지루함보다는 즉각적인 만남을 통해 휘발성 연애가 편해진 시대가 되었다.
시장의 순박함과 기다림의 시간보다는 스마트폰의 온라인 쇼핑의 즉각적 반응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학교생활의 근면함과 기다림의 묵직함은 사라지고 점수의 보상을 위한 학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 속의 철학을 지루하고 인내하며 읽기보다는 숏츠 속 화면에 뇌를 놓아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때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을 1년 동안 지루하게 기다렸던 시절은 사라지고, 언제라도 늘 아이들 앞에는 선물이 풍족히 쌓여 있는 시대에 살아가며 기다림과 지루함의 미학은 사라졌다.
종이에 글 쓰는 아이들보다 SNS의 짧은 문장만을 쓰며 뇌의 귀찮음을 던져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과정의 가치보다는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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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지루함과 버티는 힘은 우리가 살아가며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지만, 즉각적 보상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과정을 선호하지 않는다.
과정 없이 즉각적 반응을 원한다. 기다림은 존재하기 힘들다. 결국 사람들은 급해지고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과정은 생략되고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득하고 싶어 한다.
정신적 문제가 발생한다. 즉각적 보상에 익숙함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참지 못하고 폭발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과격한 행동을 벌인다. 그리고 모든 창조적 생각조차 AI와 스마트폰에 맡기고 자신의 뇌를 오프 시켜 놓는다.
지식이 쌓이기보다 지식을 소모하고, 자신의 뇌는 스마트폰 속에 저장되어 있다고 자랑한다. 결국 브레인오프의 시대가 더욱 가속화된다.
귀찮음과 기다림, 인내의 시간과 과정의 고통이 존재할 때 인간은 뇌를 쓰게 되고 창조적 생각과 삶의 철학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과정이 사라지고 뇌를 스마트폰 속에 맡겨 둔 채 자신의 뇌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숏츠의 현란함에 뇌를 지속적으로 방치해 두고 생각의 과정은 모두 생략되고 있다. 사람들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과정들은 귀찮은 시간이 되고, 스마트폰과 대화하며 자신을 잃어간다.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고민해 보고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루해도,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의 모습이고 의미인데 그 과정들이 생략되어 가는 지금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다.
스마트폰 속의 많은 정보가 자신을 똑똑하게 만들어 주는 치트키인 듯하지만, 오히려 그런 시간들이 자신의 뇌를 무감각하게 하며 생각의 폭을 축소시키는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
지루함과 기다림, 과정을 인내하는 힘이 주는 묵직함은 삶의 어려운 시간들을 버티게 해 주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을 의미로 채워줄 수 있다.
과정 속에서 지루함과 기다림 속에 담긴 시간들은 자신의 생각의 폭을 넓혀 주고, 수동적 삶보다는 능동적 삶으로서 자신의 주체적 시간을 만들어 주는 자양분이 되어 준다.
세상의 변화를 부정할 수는 없다. 아이들의 눈동자와 뇌가 숏츠에 중독되는 시간들이 아깝다. 아이만이 아니라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뇌를 맡기고 살고 있다.
브레인오프는 기다림과 지루함, 과정의 시간을 버리고 스마트폰 세상으로 빠져들며 즉각적 보상에 빠지며 발생한 현상이다. 수동적 삶이 더욱 강화된다. 능동적 활동과 주체적 삶이 줄어든다.
편안함이 자리한 시대에는 지루하고 귀찮음이 등한시된다. 어려움보다는 쉬움이 익숙하고, 기다림보다는 즉각적 반응이 선호되고, 과정보다는 결과만이 중요시되는 시대이다.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스스로도 이미 스마트폰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철강도, 다이아몬드도 아니라 인내심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그래도 버리지 말자.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힘을 키우고 뇌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글을 쓰며 브레인오프를 온으로 전환하고, 스마트폰의 즉각적 반응보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 삶의 의미를 찾아보자.
결과를 위해 존재하는 지루한 과정을 사랑하며 기다림과 과정의 의미를 깊게 새기려 하자. 그것이 주체적 삶을 유지하고 자신의 뇌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인 듯하다.
뇌가 즉각성에 중독되지 않고 숨 쉼과 지루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쓸모없는 숏츠와 영상으로 도배하지 말자. 오늘도 지루함과 기다림의 의미를 조금씩 실천하자.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둠이 깊은 이 새벽에.....
삶은 늘 지루함과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걸 참아내며 견디고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다.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깊어진다.
브레인오프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브레인온을 선택해야 한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 기다림을 사랑하는 마음, 과정을 존중하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