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 학력고사의 시대였다. 대학 입학을 위해 전국이 들썩거렸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유일한 목표를 갖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해 왔던 것이다. 하루의 시험 성적이 개인의 인생에서 사회의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는 듯 서열화된 대학을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하루의 시험에 쏟아 넣어야 했다. 어찌 하루의 평가가 학생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포인트 지점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늘 시험을 본 후에는 아쉬움이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또한 그 시절에는 대학의 간판이 가장 중요했고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도 대학 입학시험인 학력고사를 잘 보면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전국 수석한 학생은 교과서만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수석한 사람들의 단골 멘트는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멘트였다.
그 시절은 선생님의 권위가 높았고 학생들이 선생님을 스승으로 생각했던 시절이다. 외부 과외의 힘보다 학교 수업과 교과서 등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학교 권위가 존재하는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좋은 선생님들만 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꼰대 선생님들도 수두룩했다. 학력고사를 본 후에는 늘 대성학원, 종로학원에서 나오는 점수별 대학 배치도를 펼치고 어디를 지원할지 고민해야 했다.
대학의 서열화가 사람의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의견과 하루의 시험이 개인의 당락을 좌우한다는 부작용을 언급하며 학력고사의 시대를 접고 수능 종합 평가의 시대로 변했다.
문제가 국어시험처럼 긴 문장으로 바뀌었고 종합 이해력이 있어야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형태의 시험으로 변경되었다. 지금은 수능만이 아니라 수행평가도 병행되고 있어 학생들이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많아졌다.
사교육의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학교 수업으로는 수능 및 수행 점수를 따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학교 교육보다 학원 교육에 의지하게 되고 선생님들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수시 입학 등 학교마다 특성을 살려 입시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입시 컨설팅의 시장은 더욱 확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다양한 체험, 다방면의 역량 등도 고민하고 또한 특성화된 하나의 분야의 전문성으로도 평가를 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방법들에 의한 입학 방법들이 생겼음에도 유명대학 합격은 지방과 시골의 학생들에게기회가 더 적어진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사교육 시장이 차지하는 힘이 더욱 커질수록 경제적 뒷받침이 되는 집들이 입학에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는 시절이 되었다는 반증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모든 것들에 돈이 같이 움직여지기 때문에 학력고사의 절대적 점수에 의존하던 시절보다는 부유층이 우수 대학교를 선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진짜로 사라지는 속담에 포함되어 가는 듯하다. 정치 및 법조계, 유명인들의 자녀들의 입시 비리가 등장하는 것도 돈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사고 있다는 반증이다.
어찌 보면 공정성은 오히려 학력고사처럼 동일한 시험으로 한 방에 깔끔히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 공정성에서는 앞서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력고사가 만능은 절대 아니다. 암기식 입시 공부 등이 시대와는 거리가 멀게 되니~ 진정으로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인재는 어떤 사람들인지를 고민해 보고 그 방향이 설정되어 있다면 그 방향에 맞는 입시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
어제가 수능시험날이었다. 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굉장히 긴장이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대학이 전부인 세상은 절대 아니다. 필요에 의한 선택일 수는 있으나 인생을 책임질 것은 절대 아니다. 기회를 갖는 데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절대 가치는 아니기에 시험 끝나고 자신의 인생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앞으로의 창창한 젊은 날의 시간을 어떤 것으로 채워갈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젊음은 방황에서 나를 찾고 방황 속에서 나의 길을 찾는 과정이다. 시험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오늘의 경험을 더 큰 포부로 살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