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김이 밥의 주변을 감싸 다른 재료들이 움직이지 않도록 한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밥에 식초와 참기름, 깨가 밥에 뿌려진다. 이미 참기름의 정성이 밥 속에 녹아 흐른다.
씹는 촉감을 부드럽게 하는 계란이 밥 위에 얹어진다.
소시지는 고기를 대신할 만큼 본인의 역할을 다 한다.
홍당무는 김밥의 색을 이끌면서도 씹는 감을 즐겁게 한다.
재료 중에서 매우 소중한 단무지가 자리를 차지한다.
단무지의 역할은 김밥에 양념 역할을 한다.
만약 단무지의 식감이 좋지 않으면 그 김밥은 엉망이 된다.
김밥에는 모든 것을 감쌀 수 있고 전체를 보는 김밥김이 있어야 한다.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하는 재료들이 자신만의 역할을 해야 한다.하지만 최종의 맛을 잡아주는 단무지 같은 존재가 꼭 존재해야 한다.단무지의 역할은 김밥김의 역할만큼 중요하다.
처음은 김밥김과 밥이 그리고 마무리는 단무지가 한다.
모든 것의 완성은 시작과 마무리이다.
하지만 그 중간에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시작과 마무리의 역할이 무용지물이 된다.
김밥은 조화이고 균형이다.그리고 인생도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질 때 김밥의 진짜 맛이 입안을 자극하듯 인생의 진짜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너무 치우침보다 균형과 조화가 있는 삶이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리고 김밥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정성이다.
그것을 조율하고 만드는 것은 김밥 장인의 정성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정성이다.
그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던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소풍날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분주하시다. 꼬들꼬들 밥에 참기름. 식초. 깨를 넣으시고 어두운 새벽시간에 김밥을 마셨다. 시금치를 데치고 홍당무를 볶으고 계란을 한 줄씩 정성 들여 자르시고 단무지와 소시지를 준비하셨다. 지금처럼 편하게 재료가 소분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걸 직접 하셔야 했다. 그러니 새벽 3~4시경에 모든 걸 준비하셔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 혼자 추운 부엌에서 김밥을 말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일어나자마자 어머니가 김밥 꼬랑이를 남겨주시면 너무 행복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김밥 재료들의 조화 속에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가니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쉬지도 못하고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있던 것이다. 어머니의 손등은 늘 거칠었다. 손에 항상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머니는 늘 미소 짓고 계셨다.
아침 김밥이 철학과 어머니의 삶까지 나에게 들어온다.
아침에 먹는 김밥을 보며 인생을 배운다.
[생활 속 역사 이야기] 김밥의 유래ㅡ전북일보
김경모 기자 기사 중 인용
◆ 일본설
아직 많은 사람들이 김밥은 일본의 '김초밥'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이 같은 주장은 '마끼'라는 형태의 음식이 김밥의 원조라는 판단에서 시작된다. 마끼 가운데 김밥의 원형으로 지목되는 '데까마끼'는 에도시대 말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에 동경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김 속에 참치와 고추냉이를 넣은 데까마끼는 일본의 한량들 사이에 간 단식으로 애용되었다.
김초밥의 한 형태인 데까마끼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 군인들의 전투식량으로 발전했다. 일본군은 김에 두어 가지 재료와 식초를 첨가한 김초밥을 군인들에게 공급했다. 당시 일제 치하였던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형태의 김초밥이 전해졌다.
일본 유래설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김밥이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부터 주식인 밥을 김으로 싸 먹는 문화가 이미 존재했다. 일본 유래설은 일제강점기의 잔재이고, 치욕의 역사를 털어내지 못한 우리들의 뿌리 깊은 죄과일 수도 있다.
◆ 우리나라 고유 음식설
김밥의 주재료인 김이 우리나라 문헌에 등장하는 책자는 일연의 '삼국유사'로, 이에 따르면 신라시대부터 우리 민족은 김을 식용으로 이용했다. 또 '본초강목'에도 신라인들이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깊은 바다에서 김을 채취했다고 서술한다. '경상 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조선의 수산'등에 따르면 전남의 광양·완도와 경남의 하동이 조선시대의 김 특산지로 꼽혔다.
김밥의 유래를 찾으면서 김의 역사를 되짚는 이유는 김은 형태적 특성상 자연스럽게 밥에 싸 먹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이후 우리나라 각지의 세시풍속에도 오곡밥을 김에 싸 먹는 음식 문화는 널리 퍼져 있었다.
반면 일본에서 김을 식용으로 이용한 시점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늦다. 오후사 쓰요이 박사가 저술한 '바다 채소'라는 책에 따르면 일본은 18세기 초중반 이후부터 김을 음식으로 활용했다. 삼국시대부터 김을 먹었고,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보편적으로 김을 활용한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뒤늦은 시점이다. 이를 근거로 김밥은 시대적 정황상 우리나라가 훨씬 앞설 수밖에 없었다는 추론이 자연스럽다.
또 우리나라의 김밥과 일본의 김초밥은 여러 가지 음식을 김으로 감싼다는 형식은 유사하지만, 이에 접근하는 방식과 활용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우리나라의 김밥은 실용성을 강조했지만, 일본의 김초밥은 장식성 위주이다.
이들 상황과 정황을 종합하면 우리나라의 초기 김밥이 조선시대쯤에 일본으로 전해졌고, 일제강점기에 새로운 형태로 우리나라에 역수입된 것은 아닐까. 어쨌든 김밥의 일본 유래설은 명확한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논리상으로도 무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