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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Jul 11. 2022

나이듦에 대한 랩소디. 삶은 사람들 속에 물드네.

나이  들어감에 대한 흔적들

6살 때까지는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고 엄마만 바라 보머 살았지. 내 곁에는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도  엄마가 나에게는 세상이었지.


엄마는 왜 매일 일만 하고 있을까 생각했지만 나는 늘 친구들과 밖에서 놀기만 했지. 7살이 되었네. 초등학교 입학식은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어.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 선생님 분필  수업에 집중하고 세상을 배워갔지. 늘 예방 접종 주사를 무서워해서 학교 가기가 무서웠네.


10살이 되었네. 반에서 조용하고 두각 없던 놈이 친구의 덕에 시험을 잘 보았네.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고 칭찬의 엉덩이를 때려 주네. 신기한 일이 생겼네. 10살 때 시험 점수가 나를 자극하고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네. 늘 집안 일로 지쳐 있으신 엄마의 모습에 나의 성적은 엄마를 기쁘게 하네.


엄마는 늘 말씀하셨지. "자식 때문에 힘든 것도 참을 수 있다. 아들아" 난 그 말을 잊지 못하고 10살 아이에게는 희망이 되었지.


13살 중학생이 되었네. 반에서는 늘 싸움이 벌어지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매로 다스렸네. 난 세상을 잘 모르고 순수하게만 학교를 다녔네. 노는  것보다는 시험공부에 집중했고 조금씩 더 나은 점수를 기대하며 교과서의 세상에 살았네.


늘 엄마는 말씀하셨지 "점수가 안 좋아도 괜찮아. 노력했으니. 그리고 다음에 잘하면 돼지. 걱정 말아라. 아들아"


 성적이 떨어지면 선생님은 허벅지를 때려 더 열심히 하라고 자극을 주었지. 점수로 매를 든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지. 엄마는 멍든 허벅지를 보고 눈물을 훔쳤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지.


16살이 되었지. 고등학생이 되니 정말 대학 입시가 현실이 되어가는 듯했지. 다양한 지역 학생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에서 시작은 미비했지. 시간이 지나며 좋아지다  3학년 때 대입에서 떨어졌네. 재수가 시작되면서 엄마는 더욱 걱정이 커지셨지. 그리고 재수 비용을 힘들게 준비해 주셨네. 불효의 극치였지. 고속버스를 타고 매일 서울 올라오며 엄마를 위해서 열심히 했네.


드디어 대학에 들어갔네. 들어간 후 후회하며 반수를 했지만 그 자리로 다시 돌아왔네. 군대를 가서 정신을 차리고 왔네. 군대생활은 구타가 일상화되고 무의미한 허튼짓들이 난무하는 곳이라 너무 싫었지만 사회 나가기 위한 용기를 얻는 시간이었다고 추억하고 싶네. 시간이 아까워 대학 복학하고 도서관 생활을 했네. 매일 도서관에 새벽시간 조용하게 공부하는  것에 희열을 느꼈네. 답답하면 올드팝을 들으며 다시 책 속으로 빠져드는 생활을 즐겼네.


과외로 번 돈으로1년을 휴학하고 처음으로 외국을 갔네. 유럽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네. 두려움이 출발에 대부분였지만 돌아와선 두려움이라는 게 사라졌네. 삶을 적극적으로 살고자 노력했네.


취업을 위해 원서를 쓰고 28살의 많은 나이에 취업했네. 엄마는 기뻐했고 좋아하셨네. 회사를 다니는 몇 년은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컸고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으로 배움에 목말라했네. 그만 둘 생각과 방황하는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네. 나의 감정을 글로 쓰며 나의 멘털을 다스렸네.


 어느새 30살이 넘었네. 혼자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네. 인생의 방황이 있기에 아직 짝을 찾는 것 사치로 생각했네. 35살이 되면서 결혼을 했네. 부모님의 보살핌과 형제들의 도움으로 결혼을 할 수 있었네. 부모님은 많이 연약해지셨지만 늘 자식을 걱정하시네.


엄마는 말씀하시네 "잘 지내니. 이번 주말에 내려오니"  보고 싶어 하시는데 나는 늘 대답하네 "상황을 봐야 해요"  기다리시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알지만 가보지를 못하네.


 40이 되었네. 아이가 조금씩 크고 너무 귀엽네. 회사 다니는 게 버거울 때도 있지만 가장으로 책임감을 느끼네. 하지만 늘 인생의 방향은 고민하고 있네. 글 쓰는 것을 계속 쓰며 나의 인생을 글로 정리하네.


48세가 되어 사랑하는 어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네. 편찮으신 몸으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는 늘 말하시네. "죽으면 아무것도 소용없다. 살아 있을 때 목소리라도 한번 더 듣는 게 나은 거야. 나 살아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자."


그런데 자주 뵙지 못했네. 그래도 어머니는 나에게는 평생 천사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셨네.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나보내시고 당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시네.

아버지는 전화로 늘 짧게 이야기하셨지. "괜찮으니 걱정 말아라"  하지만 많이 편찮으셨고 자식에게는 짐을 지우고 싶지 않으셨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그리고 나도 50이 되고 60이 되겠지. 그런 다음은 이 세상에 존재할지는 정말 모르겠네. 그전에도 이 세상을 떠나 어머님 곁으로 갈 수도 있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 나이가 들수록 하나씩 건강이 좋아지지는 않는 것은 분명하네. 그래도 내 곁은 기댈 수 있는 부인이 있고 착한 아이가 있으니  조금은 다행이네. 하지만 혼자라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있다는 것. 슬픔의 크기는 무지 커지겠지만.


참 재미있는 일은 부모님께 전화할 수 있을 때는 자주 못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부모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것. 어머니가 늘 하신던 말씀 "죽으면 아무 소용없다. 살아 있을 때 목소리라도 한번 더 듣는 게 나은 거야" 귓가에 맵도네. 하지만 부모님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지. 나도 언젠가는 부모님 곁으로 가야 하지.


50이 되고 60이 되는 과정에서 시간은 나에게 무엇을 만들지 모르지만 난 그 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을 만들어 가고 싶네.


그게 집의 가족이든 회사의 동료와 후배들이든 학교 친구들이든 사회 친구들이든 과정들 속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을 만들어 가고 싶네. 살아가는 것이 배우는 과정이고 살아가는 것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좌우명으로  살아왔네. 그 속에 늘 사람들이 있네. 그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사람보다는 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네.

난 6살이 되고 7살이 되고 13살 중학생이 되고 16살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28살 회사원이 되었네. 30의 방황이 시작되고 35살이 되고 40살이 되었네. 48살이 되고 부모님이 곁을 떠나고 조만간 50살이 되고 60이 되겠지. 그 과정 속에 작은 행복들은 사람에게서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네.


부모님의 사랑에서 나의 행복이 왔듯이. 나이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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