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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Aug 14. 2022

아날로그 감성은 곡선이다.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진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들이 규격화되고 통일화되어 왔다.


로마제국이 많은 나라를 흡수하고 도로를 표준화하며 더 많은 곳으로 확장해 가며 융합을 이루어 번성했고 중국은 넓은 땅의 소수민족들을 흡수하며 중국화를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하면서도 다양한 부분을 통일화 규격화 표준화를 해 왔다. 통일화 표준화 규격화는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혼돈을 줄여주는 좋은 방법이다. 어디를 가나 체인 호텔들은 표준화된 매뉴얼로 동일한 톤 앤 매너를 유지하여 사람들에게 안도감과 익숙함을 선사한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규칙과 규율은 명확해지고 주변의 삶들이 표준화 규격화되어가며 직선의 형태로 나아가게 된다.


슈퍼마켓을 가도 대형마트에 가도 우리가 먹는 동식물의 식자재가 규격과 모양을 맞추어 정리정돈이 되어 있다. 대부분의 동식물의 모습은 사라지고 직선으로 잘린 형태의 규격화된 식자재만이 펼쳐져 있다. 자연의 모습대로 보이는 식자재는 사라지고 오직 잘 정돈되고 깨끗하고 규격화에 맞는 예쁜 식자재들만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고기도 사각형의 직선 형태로 정리되어 있어 이 고기가 어떤 형태에서 생산되었는지 알 수 없다. 채소들도 다 정돈된 상태로 팩에 담겨 있어 어떤 형태의 식물에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너무 편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음식을 만들기에 너무 편하고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식자재를 사서 집에서 손질할게 거의 없기 때문에 요리도 금방 할 수 있다.

 현대가 더 고도화할수록 다양한 물건은 규격화 표준화가 심화되고 우리가 먹는 음식들도 규격화 표준화된다. 예전에는 백숙을 하기 위해서는 키우는 닭을 잡아서 온갖 식자재를 밭에서 따와 요리를 했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 떠들며 그 시간을 즐겼다. 지금은 규격화된 팩에 들어 있는 백숙 식자재를 넣어 끓이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HMR이 모든 마켓에 펼쳐있다. 또한 닭 전체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부위만 사 먹을 수 있도록 정리정돈되어있다. 닭이 어떻게 생기고 어떤 모습을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규격화는 소비자들에게 너무 편하게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마켓에 나와있는 농산물은 이제 생물이 아닌 공산품이다.


 이어령 교수는 "지의 최전선"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물은 원래 불규칙한 것인데 그래서 자연은 직선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슈퍼에서는 그 반대야"


"옛날엔 밭에서 무를 뽑아먹었다. 고추, 배추, 무죄다 직접 길러서 김장하며 자급자족하던 시절 말이다. 그때의 농산물은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사람들 키가 저마다 크거나 작거나 중간인 것처럼 말이다. 공장 기계에서 붕어빵처럼 찍어 나오는 공산품과는 달리 생명이 있는 것은 표정과 개성이 있다는 거다. 어릴 적 어른들이 마당에 고추, 대추를 널려놓고 말리던 것을 떠올려보라. 그 모양이 다 다르다. 벌레 먹어서 조금 흠집 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깨끗한데 모양이 찌그러진 것도 있지 않나, 김장할 때 가만히 보면 못 쓰게 생긴 것은 한데 다 모아둔다. 그것을 버리지 않고 시래기로 만든다. 햇빛에 널어 말리면 비타민 C가 더 풍부해진다. 그게 시래기 문화다.

그것처럼 살아 있는 것들은 어떤 규격에 맞지 않아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쓸모가 있다는 거다. 벌레 먹은 배추, 찌그러진 감자라도 어딘가에 쓸 데가 있다. 그런데 슈퍼마켓과 백화점에 가서 보면 모든 공산품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정육점에 통째로 매달린 쇠고기를 사세요. 그래야 자기가 먹는 쇠고기의 모양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지. 슈퍼에 진열된 고기들은 무슨 고기든 똑같이 썰어서 비닐 포장되고 바코드가 찍혀 있어. 그래서 요즘엔 다리가 네 개 달린 닭을 그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거야."


규격화와 표준화는 사회의 고도화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많은 부분이 규격화 표준화될수록 아날로그 감성은 우리  곁에서 잊어간다.


 그런데 우리 곁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 아날로그 감성이 사라지면 굳이 사람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아날로그 감성이 요즘은 레트로라는 용어로 표현되기도 하고 복고풍이란 언어로 대신 사용되기도 한다. 아날로그 감성은 직선의 표현보다는 곡선의 표현, 정제되고 규격화된 것보다는 미 정제되고 살아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세상이 편해지고 규격화될수록 아날로그 감성은 더 귀하게 느껴질 것이다. 오히려 농산물 중에는 못난 과일이 유기농이라고 더 비싸게 판매되는 것도 있다. 잊혀 가는 곡선의 아날로그 감성이 직선의 규격화와 디지털화로 약해지는 모습이 아쉽다.


아날로그는 본질을 찾고 사람들의 소중함 생물의 귀중함을 알아가는 감성이  녹아 있는 형태이다. 정제되어 있지 않고 부족하기에 향수를 느끼고 불편함을 감수한다. 그런 아날로그 감성이 메말라가는 현대 사회에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 갈수록 사람들이 잔인해지고 사람들을 가볍게 대하고 물질주의에 병들어 가는 현대사회에 아이들에게 조금씩이라도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이야기해주고 경험하게 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아날로그 감성은 사람들 속에 녹아있는 본질이다. 그 감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인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직선의 모습보다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이 0과1의 점수와 직선만을 바라보는 획일화된 모습이 아닌 곡선을 알고 다양함의 불편을 이해하는 그런 아이들로 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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