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어깨 펴고 급해도 천천히 가요. 선배 걷는 거 보면 뭐가 급한지 몸이 앞으로 나와 있고 급히 걸어가더라고. 그냥 어깨 펴고 급해도 급하지 않게 걸어갔으면 해"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후배이다. 이제는 어엿한 팀장이 돼서 나에게 조언을 건넨다. 그 친구는 신입사원부터 일 잘하는 친구로 유명했다. 똑 부러지는 성격에 맡은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 있게 업무를 수행하는 친구였다. 사무실을 지나가다 보면 늦게까지 혼자 남아 보고서를 작성하며 직장 생활을 했던 친구다. 어찌 보면 한 때 워커홀릭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40 중반인데 결혼을 하지 않고 회사 일에 푹 빠져 있었다.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아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부서를 자주 옮겨 다녔다.
"선배! 회사에서 늘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그곳에 참여해서 정신없이 지냈는데 업무의 조정으로 신규 프로젝트가 아닌 프로젝트 리스크 관리 업무를 맡았어. 늘 새로운 것을 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리스크 관리하는 업무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나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보니 어떻게 업무를 해 나갈지가 고민돼. 팀원들도 많다가 2명으로 줄고 일은 해야 하는데 리스크 관리의 전문가가 팀 내 없고. 입에서 불만이 자꾸 나오는데 해 나가야지 뭐! 그냥 묻혀 있으면 조용히 묻혀서 직장 생활할 수 있는데 성격이 급하고 묻혀서 사는 버릇이 안 돼서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회사 내에서 일을 많이 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환경이 변하고 느긋해진 듯하면 그 상황을 낯설어한다. 일이 적어져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일하는 걸 즐기며 성장하려는 친구는 그런 상황이 썩 좋지 않다. 바쁜 회사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마인드가 갑작스러운 느슨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달리던 속도를 줄이면 뭔가 문제가 있는 듯 어색해하고 속도가 줄어든 상황을 즐기지 못한다.
후배가 이야기했든 "선배, 어깨 펴고 급해도 천천히 가요"라는 말이 본인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늘 삶은 변한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도 변해간다. 또한 자신이 회사 내 중심부에 있다가 소외받는 느낌이 들면 그 상황을 답답해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전투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도록 달려온 시간들이 있기에 후배의 지금 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회사 내 일의 의미를 느껴보지도 못하고 느슨하게 살아온 친구들에게는 느슨함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런 친구는 일의 격함을 느끼기보다 회사의 월급뤼팡으로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후배처럼 일의 격함을 느끼며 살아온 친구들에게는 느슨함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고 중심부에서 벗어난 느낌도 기분이 묘하게 다가온다.
분명 중심부에서 멀어지면 잊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중심부에서 달려온 시간들이 힘들긴 하지만 나름 보람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바쁜 생활조차 익숙함이었고 낯섦에 노출된 자신을 바라보는 지금이 변화의 시기일 것이다. 자신의 길을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당장의 일들이 자신을 옭아매지는 않을 것 같다. 단지 스스로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 본인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라도 낯섦에 놓이게 되고 중심부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농담으로 던졌던 후배의 말 "그냥 묻혀가면서 오래 다닐까 봐요" 절대 후배는 그럴 수 없는 친구이다. 이미 본인의 성향을 알기에 던지는 시니컬한 농담이다. 오래 다니지 않게 다는 결심을 늘 해 왔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 것 보니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답답한 듯하다.
내가 답답하냐고 물으면 "아니야 선배 뭐가 답답해 그냥 그렇다는 거지"라고 답할 친구이다. 후배에게는 지금 이 시간이 또 다른 변화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냥 이 시간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라.
자신이 여유롭게 보내지 못했던 시간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해 나가는 시간으로 가졌으면 한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시간에 무엇을 더하고 빼면서 살아갈지를 적어보는 것도 좋다. 내 삶에서 의미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조정하며 자신의 삶의 구성을 변경해 보는 것이다.
읽고 싶었지만 못 읽었던 책과 영화를 보면서 웃고, 울고, 자극받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다른 분야의 친구들과 만나며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반추해 보는 시간으로 활용해도 좋다.
열심히 살아온 후배들은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열정이 자신의 가치를 만들고 가치가 자신의 브랜드가 이미 되었기 때문에 후배의 브랜드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변화 속에서 자신이 흔들리고 불안해 할 수는 있지만 열정적으로 일을 해온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단단한 브랜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브랜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잠시 어깨 펴고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 계속 페달만 밟다가는 브레이크를 잡지 못한다. 돌아가는 페달 속도에 자신 스스로가 브레이크를 잡는 것을 잊는다. 넘어진 후에야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