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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Nov 22. 2023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그럼 유연함

유연함이 주는 단절과 하나의 철학

인간이 현명해지는 것은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경험에 대처하는 능력 때문이다. <데카르트>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설렌다.


기존의 패턴을 바꾸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일을 한다는 것이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한다면, 기존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리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한다면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달력의 숫자들이 일 년이 지나감을 알리고 다음 년의 시작을 알릴 때 우리는 뭔가 새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기존의 행위나 기존의 기준점들이 달라지면 숫자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우리는 그것에 의미를 두고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의욕을 얻게 된다.


새롭게 시작하려면 단절이 필요하다. 맺음이 되어야 새로운 시작이 된다.


일을 하다 보면 마무리가 안 되고 지지부진하며 끝이 안 나는 일들이 있다. 뭔가를 새롭게 하려 해도 머리에는 기존해 오던 일들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빨리 마무리를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다 보면 어정쩡한 상태로 남게 된다. 그런 시간이 지속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일상이 지루해진다. 새로운 게 없는 지루함에 지쳐버린다.


늘 새로울 수는 없고 늘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인드셋으로 우리는 설렘을 얻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개념을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스스로가 바꾸어 버리면 된다. 우리 스스로가 정하면 된다.



시간은 아침과 저녁의 기준일 수도 있고 하루라는 날짜일 수도 있다. 더 쪼개보면 시간 단위로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꼭 달력의 1년이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1년이 지나면 새해 다짐을 하는 것이나 하루 지나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이나 다를 것은 없다.


공간의 개념도 동일하다. 사무실의 공간에서 카페의 공간으로, 사무실에서 집의 공간으로, 집에서 사무실의 공간으로, 사무실에서 걷기의 공간으로 우리는 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의 마인드셋이 그것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정원이고 마음은 정원사입니다. 게을러서 불모지가 되든 부지런의 거름을 주어 가꾸든 그것에 대한 권한은 모두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오델로 중>


생각의 유연함은 원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원칙은 있데 생각에 있어서 유연하게 오픈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유연하다는 것은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부드러운 태도로 사항과 문제들을 접근한다는 것이다.



불굴의 투지로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것을 '꺾이지 않는 힘'이라는 말을 쓴다.


꺾이지 않는 힘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꺾이는 게 우리의 인생사이고 삶이다. 꺾이지 않는 것은 곧게 서 있다는 것이고 너무 곧은 것은 꺾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드러움은 외유내강의 힘을 간직한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내면의 힘은 강하다. 그래서 외부의 상황들을 받아들임에 있어 유연하다.


대나무를 보면 바람에 꺾이는 게 아니라 바람의 방향에 순 향하고 역 향하지 않다가 자신의 자리에 다시 돌아온다. 꺾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람의 힘을 이용해 회복탄력성을 찾는다.


'꺾이지 않은 힘'이라는 것은 오히려 부드러워서 회복탄력성이 좋고 유연한 힘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꼭 꺾이고 부러져야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늘 새롭게 시작하고 있고 새로운 기운을 갖고 우리의 인생과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설렘과 새로움의 시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느끼고 행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새로워지는 설렘을 두려워하고 지금에 안주하고 지금의 나태한 모습에 자기 당위성을 찾으려 하기에 꺾기는 것이다. 그리고 유연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하루하루 새로움이 존재하기 위해 분절된 시공간이 존재하는 듯 하지만 결국 인생은 분절된 것이 아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다른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삶은 흐른다. 분절된 것이 아닌 연결된 선이 죽을 때까지 지나가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 있듯 우리는 하나의 삶인 것이다.


참 웃기지 않은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분절을 통한 마인드셋이라고 하면서 삶은 하나라는 연속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런데 웃기지만 삶은 그렇다.


우리의 마인드셋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시공간의 단절이 필요한 듯 하지만 그런 새로움의 시작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은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선의 형태로 또는 원의 형태로 이어져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유연함의 힘은 단절과 연결됨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옛것을 본받는 사람은 낡은 자취에 얽매이는 것이 병폐요, 새것을 만드는 사람은 법도를 벗어나는 것이 걱정이다.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되 변통할 줄 알고(法古而知變) 새것을 만들되 법도에 맞는다면(創新而能典) 지금의 글도 옛 고전과 같게 된다. <연암 박지원, ‘초정집서’>


단절만 존재하지도 않고 연결됨만 존재하지도 않는 인생의 묘한 매력을 느끼며 균형 잡힌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유연함의 힘이고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이 된다.


오늘 하루에도 단절됨과 연결됨이 존재하는 시공간의 세계에서 우리의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가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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