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서 다르게 걸어보기
큰 나무 밑의 작은 초목들 사이로 흔적만 남아 있는 오솔길을 한 없이 걷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길을 잃어야만 자신의 마음에 더 잘 귀 기울이고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원초적 인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나면 자기 자신과 더 잘 조화를 이루게 된다. 더 이상 자신을 숭배하지 않고 그냥 사랑하게만 된다. 다른 사람들과도 더 잘 조화를 이루게 된다. 지친 태양의 고요함과 땅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낙엽의 감미로움, 자연의 크고 느린 호흡으로 에워싸인 이 산책길에서는 문명화된 세계, 그 자체의 공포와 거짓된 위대함, 열광적인 행복, 분노 등을 가진 그 사회가, 그 모든 것들이 나무들이 이룬 부드러운 가림막 뒤로 흔들리면서 이제는 오랜 재앙으로 보일 뿐이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뭔가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걷다 보면 정말이지 모든 것이 다 너무 느리게 이루어진다. 섣부른 기대는 실망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자신의 리듬에 따라 다음 숙박지까지 걸어가야만 한다. 평정이란 곧 그냥 길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걷는 동안의 평정은 또한 모든 근심 걱정과 비극이, 우리의 삶과 육체에 속이 텅 빈 고랑을 파놓는 모든 것이 완전히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