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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Dec 17. 2023

어린 시절 우리의 추운 겨울, 무엇을 먹고 살았나

추운 겨울은 추억을 간직한다.


● 추억:  색이 바라지 않는 진한 기억. 지난 일은 처음엔 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에 저장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기억의 아주 일부는 추억이라는 진한 이름을 얻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자리를 옮긴다. 기억은 머리가 하고 추억은 가슴이 한다.
<사람사전 중_카피라이터 정철 저>




 어린 시절 겨울은 매우 추웠다. 지금의 추위보다 더욱 매서웠다. 겨울은 추운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곳곳이 얼어 미끄러웠고 동네 아저씨는 연탄재를 부셔서 동네분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밖의 바람은 얼굴과 손을 붉게 만들어 주었고 차가운 바람에도 어머니는 밤낮없이 연탄불이 꺼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만 했다.


늘 밖에 나갈 때는 양발 2켤레, 털모자, 내복은 기본이었다. 그래도 솔직히 추웠다.


어린 시절에는 히터가 실내에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는 조개탄을 태우는 연통 난로가 있었다. 당번은 늘 아침이 되면 조개탄을 가져와 교실 난로에 불을 붙여야 했다. 불이 붙는 동안은 추위에 떨면서 검은 연기를 들여 마시며 참고 앉아 있어야 했다. 


 날씨가 추워도 겨울이란 계절은 아이들에게 놀이를 만들어 주었다.


밖에는 천상의 스케이트장이 항상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얼음이 언 논이 천상의 스케이트장이었다. 있는 집은 스케이트를 타고 없는 집 아이들은 나무썰매를 탔다.


오랜 시간 밖에서 놀면 손이 갈라지고 귀는 동상에 걸린다. 따뜻한 곳에 들어가게 되면 동상 걸린 귀는 가렵기까지 했다.


놀다 극강의 추위가 몸으로 들어오면 짚과 장작에 불을 피우고 젖은 양말과 장갑을 말렸다. 집에 가면 따듯한데 굳이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밖에서 불을 지피며 수다를 떤다. 젖은 양말에서 김이 오르고 한참을 말리다가 태우기까지 한다.


 지금은 플라스틱 썰매를 마트에서 팔지만 예전에는 눈이 오는 날이면 보일러 파이프를 잘라 불에 그을려 나무썰매의 다리에 부착한 수제 나무 썰매를 탔다. 썰매를 끌고 경사진 도로 꼭대기로 올라가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면 그 스릴에 하루가 다간다. 아이들에게는 추운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한숨을 쉬셨다. 감당하기 어려운 빨랫감을 가져왔기에 절로 한숨이 나온 것이다.


세탁기가 없어 모든 게 손빨래였다. 차가운 물로 손이 얼어가는 것도 모르고 자식을 위해 빨래를 하셨다. 형제들은 내복만 입고 어머니가 갈아주신 연탄불 덕에 따끈한 방에 이불을 덮고 TV를 보며 군고구마 껍질을 까고 있었다.


따끈한 방의 기운이 몸을 녹일 때 스르르 잠에 빠졌다. 노곤했던 몸이 기지개를 켜면 어머니는 따뜻한 청국장을 끓여 방에 상을 차려주셨다. 보글보글 끊여진 청국장 위에 하얀 두부가 올라와 있다. 청국장 냄새는 온 집안을 들썩이지만 냄새가 더 날수록 배고팠던 식욕을 강하게 자극했다. 고봉밥 한 그릇으로는 부족하다.


어머니는 땅에 묻어두었던 김장김치 한 포기를 항아리에서 직접 꺼내신다. 그리고 배추 머리만 자르고 큰 대접에 넣어 상에 올려놓으신다. 자르지 않은 배추김치를 손으로 잡고 그냥 입으로 넣는다. 땅에서 올라온 배추의 싱싱함과 아삭함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도록 그 시간을 지배한다. 한 그릇의 흰쌀이 후딱 없어진다





추운 밤이 찾아오면 TV에서는 9시 뉴스를 한다. 늘 뉴스 끝에는 일기예보를 해 준다. 어린 시절 가장 재미없던 프로가 뉴스였는데 이제는 왜 어르신들이 뉴스를 보았었는지 나이가 들며 알아가게 된다.


"내일도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기운이 한강을 얼게 하고 주변 공기를 차갑게 합니다."


기상캐스터 아저씨가 전달한다. 지금은 기상캐스터가 대부분 여성이지만 어린 시절은 남자분이 기상캐스터였다.


밖에는 추위도 잊은 채 밤의 배고픔을 달래줄 찹쌀떡 아저씨의 음성이 들린다.


 "찹쌀떡 메밀묵~~"


찹쌀떡 아저씨들도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어린 시절 겨울은 너무 추웠다. 하지만 추위 속에 사람들의 온기와 추억들이 담겨 있다.


추운 겨울일수록 고생의 강도가 극강이셨던 분은 어머니셨다.


우리는 노는데 바빴지만 늘 집안일을 하시느라 바쁘셨다.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추운 부엌에서 늘 집안일을 하셨고 물이 흐르는 외부 동네 공동 빨래터에서 빨래를 이고 가 가족들의 빨래를 그렇게 추운 날씨에도 하셨다. 본인의 손이 얼고 귀가 얼어도 자식의 손과 귀를 먼저 걱정하시고 계셨다.


추운 겨울의 많은 추억들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지만 겨울의 차가움이 어머니의 손에 고스란히 남아 있던 시간은 어떤 기억보다 강하게 살아 움직인다.


옛 시절 겨울의 추위가 소중한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정성이 지금도 내 몸에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키워주신 사랑이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었다.


어린시절 우리의 추운 겨울은 어머니의 따뜻함과 추억을 먹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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