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운동을 합니다. 출근 전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샤워를 합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물의 온도를 맞이 합니다. 하지만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할 때는 자연스럽게 차가움을 몸으로 받아드리려고 신체가 준비운동을 하게 됩니다.
냉수마찰의 준비 운동은 머리부터 시작됩니다. 물의 차가움을 머리부터 느끼도록 합니다. 머리가 차가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몸 전체가 차가움이 다가온다는 걸 미리 알게 됩니다. 샤워기의 차가운 물이 몸에 와 닿습니다. 밖의 차가운 겨울 공기가 사람의 심리를 더 차갑게 느껴지도록 합니다.
방의 따뜻한 온도와 이불의 푸근한 안락함이 주었던 즐거운 잠자리의 몸이 차가운 물의 터치감에 수축하며 소름을 돋게 합니다. 처음의 터치감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차가운 냉수마찰이 금방 익숙해집니다.
사는 것도 비슷합니다. 변화가 생기면 어색합니다. 변화는 움직임입니다. 움직임이 없으면 변할게 없습니다. 움직임은 운동이고 삶 그 자체입니다. 죽은 나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게 살아 있는 나무이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죽은 나무입니다.
처음 맞이 하는 변화에 어색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두렵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다가오고 직접 변화의 움직임과 운동에 서 있게 되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변화의 흐름에 자신도 흘러가게 됩니다. 변화는 살아있는 것이기에 살아있는 인간은 변화가 어색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죽어가는 것을 싫어하기에 살아 움직이는 변화를 수용합니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스쳐지나갈 때 정신이 바짝 긴장합니다. 낯선 물줄기가 편안하게 쉬고 있는 세포들을 깨우고 차가움이라는 낯선 손님을 불러오기때문입니다. 차가운 물을 몸에 뿌리기 전까지는 모든 세포들이 긴장모드입니다. 조심조심 움직이지만 온몸에 차가운 물이 한번 지나간 후에는 차가운 물의 촉감에 익숙해집니다. 두려움과 걱정은 사라지고 정신과 신체가 정화되는 느낌이 듭니다.
냉수마찰 후에는 밖의 차가운 바람이 낯선 차가움이라기 보다는 익숙한 기운으로 다가옵니다. 시작은 어렵지만 냉수마찰이 진행되는 순간들이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무엇을 하던 시작의 어색함과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움직이고 행동하며 변화를 주었을 때는 그 시간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순간이 되어 줍니다.
살아가며 귀찮은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것도 많습니다. 냉수마찰을 꼭 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며 익숙함에 안전히 있어도 괜찮습니다. 굳이 차가운 물을 온몸에 뿌리며 힘든 시간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자학 할 필요없이 안전하고 편안한 시간만을 추구해도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스스로의 나태함에 야단을 쳐 주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신적 나태함뿐만 아니라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에게도 긴장은 필요합니다. 50조의 세포로 만들어진 신체는 계속 움직이고 활동합니다.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활동량이 위축되고 축소됩니다. 그 움직임에 활력을 주는 시간이 되어 주고 하루의 시작에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는 기회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냉수마찰은 신체를 깨어나게 합니다. 차가운 물줄기가 온몸을 감싸을 때는 입에서 차가움의 놀람에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고 신체가 깨어나고 있다는 신호를 줍니다. 샤워 후에는 온몸에서 김이 납니다. 온몸을 씻고 하나씩 옷을 입으며 출근 준비를 하면 밖의 차가운 바람을 차갑다고 느끼기 보다 별 것 아닌 듯 한 착각을 불러옵니다.
집에서 가족들과 있을 때는 안락함에 취해 오히려 냉수마찰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혼자라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오히려 아침의 자아를 더 정화시키고 온몸의 세포에 긴장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태함은 끝이 없기에 스스로의 삶을 단련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에게 솔직해 지고 싶었습니다.
단단해지고 성숙한다는 것
자아의 정신과 육체가 독립되고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차가운 물방울이 아침에 정신과 육체에 주는 긴장감은 '자아'가 성숙한 독립체로서 움직이는 '살아있음'을 전달해 주는 의식이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