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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Mar 07. 2024

아들에게 주는 유언장

이 모든 시간들이 아이에게 유언이 된다.

혼자 사는 일상에서 벗어나 2주에 한 번씩은 서울집에 올라온다. 가족이란 품으로 오면 혼자 사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행복이 존재한다. 혼자 사는 동안의 심플함과 미니멀은 없지만 가족끼리 부딪기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그런 시간도 혼자 사는 일상과 또 다른 행복의 시간이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존재한다는 게 행복하다. 가족들이 있다는 것은 외로움을 적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다고 가족이 막 격하게 반겨주는 일은 아니다. 그냥 평상시 대로 있는 둥 없는 둥 그렇게 짧은 휴일을 보내는 것이다.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뭘 하기보다 그냥 집에서 일상을 보내는 시간이다.


아이는 아빠의 등장에 행복해한다. 학교생활에서 자랑하고 싶은 일들을 모아 나에게 풀어놓는다. 요즘은 '아이브'라는 가수에 흠뻑 빠져 춤까지 보여준다. 휴대폰 게임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는 전혀 관심 없던 분야에 빠져 덕질까지 한다. 뭔가에 흥미를 갖고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이는 스마트폰을 엄마에게 반납했다. 나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스마트폰에 중독현상이 보이는 듯해서 걱정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는 울며 스스로 휴대폰을 반납하겠다고 했다.


"아빠 마음 바뀌기 전에 제 휴대폰 가져가세요. 저 내일 되면 마음 바뀌어서 다시 스마트폰에 빠질 수 있어요"


우는 모습이 안 되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솔직히 스마트폰을 아이에게 나둘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다 둘 다 잠이 들었다. 회사로 돌아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엄마에게 게임용 휴대폰을 아들이 반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아이의 결단에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공신폰만 사용하고 게임용 스마트폰(쓴던 중고폰)은 반납하니 처음에는 심심했지만 막상 없으니 그냥 그럭저럭 생활을 한다. 주변 친구들이야 다들 스마트폰을 가져 다니며 여러 가지를 하지만 카톡도 안 되는 공신폰을 가져 다니며 자연스럽게 적응을 해 나간다.


스마트폰의 공백을 '아이브'라는 가수로 대체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스마트폰의 게임보다 그게 더 나아 보인다. 사람이란 대상을 동경하고 그들의 노래에 빠져 춤도 추기도 한다. 돈 쓰는 것은 게임 현질 못지않게 쓰지만 그래도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스마트폰의 게임 세상보다는 낫다.


스마트폰을 반납하는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보여준 모습에 아빠로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아들이 스스로의 생각을 실천하는 모습에 칭찬을 쏟아 내었다. 아들도 이런 행동에 칭찬받으니 오히려 긍정적 에너지를 받는 듯 한 표정이다. 스스로의 결단에 자신도 꽤 괜찮은 행동이란 생각을 하는가 보다.




서울에 오는 날은 나의 스마트폰을 그에게 허락해 준다. 아빠가 있는 날은 스마트폰 게임을 할 수 있는 날로 정해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그에게 건네준다. 그에게도 절제하는 삶 속에 간혹 즐기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다. 엄마는 그것도 약속 위반이라 하지만 그렇게까지 아이의 즐거움을 뺏어 버리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이젠 많이 컸다. 학원 생활이 더욱 힘들어지고 과제는 많아진다. 그래도 그런 환경들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받을 수 있지만 스스로가 절제하며 끈기 있게 해 나가는 모습에 심신이 다쳐 쓰러지는 일은 없을 듯하다.


아이와 어릴 적부터 같이 잠을 자 왔다. 어린 시절 잠자기 전은 아빠의 가공된 이야기들이 풀어헤쳐지는 시간이었다. 아이는 아빠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잠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자주 비몽사몽의 가수면 상태에서 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이야기를 한 적들도 많았다.


아이가 성장해 가는 시점에도 늘 잠자기 전은 아이와 아빠의 대화 시간이었다. 서로의 일상 이야기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영화, 돈, 친구, 학교, 정치, 그리고 엄마 이야기까지 이 세상의 모든 주제들을 올려놓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였을 때다.  한 번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빠와 엄마도 언젠가는 너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갈 거야. 그때는 너 혼자서 우뚝 서서 살아가야 해. 하지만 아빠와 엄마는 너 곁에서 늘 너를 지켜보며 도와줄 거니 너무 걱정은 말아라."


그러자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이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아빠 죽지 마.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아 다음부터는"


삶에 대한 깊은 대화를 어린아이에게 해 주면서 이 아이가 세상을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험한 세상에 홀로 걸어가는 시간, 스스로를 다치게 하고 괴로워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삶의 사이클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지금은 대견스럽게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심하며 의젓하게 자신의 포부도 이야기한다. 부드럽고 유하게 보여도 내면은 많이 단단해져 있는 느낌이 든다. 삶이라는 여정에 자신의 방향을 설정해 나가며 혼돈스러운 부분은 아빠에게 묻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처럼 보냈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은 동일하다. 그와의 시간은 감성이 넘치고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둘만의 특별한 추억들이 존재한다. 어느새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아이가 부쩍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아이가 당당해지는 모습에 간혹은 서로에게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에게 늘 이 말을 전한다.


"아빠가 쓰는 글들이 너에게는 유언이야. 이 글들을 모아 너에게 줄 수 있는 책 선물을 해 줄게. 아빠가 하루하루 쓰는 글들이 너에게 의미 있는 말들로 전달되었으면 해. 살아가며 힘든 일도 있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아빠의 글들을 보며 위로를 삼았으면 해. 아빠가 이 세상에 없어도 너에게 이 글들이 네가 성장하는 시점마다 힘이 되어 줄 거야. 사랑해 우리 아들"


그리고 꼭 안아 본다.


아들이 있어 좋다. 가족이 있어 좋다. 그리고 그들과 추억을 만들고 살아가는 게 좋다. 언젠가는 떠날 그날을 준비하며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나의 역사이고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아이와의 추억이다.


글을 통해 그에게 나의 유언을 남기고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성장해 가는 아이를 보며 나도 어는 순간은 그의 곁을 떠나고 주변의 것들과 이별하는 시간이 오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아감에 이별은 늘 존재하는 것, 그 이별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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