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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May 27. 2024

플레인 요거트_50대 혼자 사는 일상

담백함, 심플함, 겸손함

단순함은 복잡한 것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단순해지려면 당신은 생각을 명쾌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럴 가치가 있지요. 일단 당신이 그 단순함에 도달하면 당신은 산을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    


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우연히 우유를 두었다가 자연발효 과정을 거쳐 바뀐 요거트가 된 것이 '요거트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에 플레인 요거트를 먹는 게 아침 일과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플레인 요거트는 다른 요거트와는 다르게 달콤한 맛을 내는 당류의 첨가물이 없는 요거트입니다. 개인 취향이지만 딸기맛, 복숭아맛, 포도맛 등 다양한 첨가물이 들어간 요거트보다 플레인 요거트가 담백하고 좋습니다.


달콤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다 보니 플레인 요거트가 요거트 중에 가장 좋습니다. 플레인 요거트를 아침마다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담백하고 맛이 밋밋하기에 오히려 다른 것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 맛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뚜렷이 갖고 있으며 담백합니다. 그리고 심플합니다.  단지 당류의 달콤한 유혹을 첨가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화려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심플합니다.  


유함 속에 강함이 존재하는 그런 담백함입니다. 본질을 유지하며 담백함을 지켜나가니 주변과 오히려 잘 어울립니다.


늘 아침에 먹는 플레인요거트에 견과류를 넣어 먹고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잘라 넣습니다. 어떤 과일이라도 잘 어울립니다. 어느 때는 삶은 계란을 으깨서 넣기도 하고 빵이 있을 때는 빵도 잘라서 넣어 먹기도 합니다. 와이프는 지저분해 보인다고 뭐라고 잔소리하지만 플레인요거트가 가진 본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본질은 유지하고 쓸데없는 것을 첨가하지 않으니 오히려 담백하고 심플한 매력이 있습니다. 너무 달콤함이 존재하는 요거트라면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화려함과 강함에 취해 주변을 보지 못합니다.  화려함보다는 담백함, 심플함이 플레인 요거트의 매력입니다.  


자신이 겸손하기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어울릴 준비가 되어 있는 포용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플레인 요거트는 절대로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본질과 본연의 모습을 잘 지킬 수 있는 용기가 있기에 겸손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내 본질을 잘 유지하고 지켜나가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주변과 잘 어울리며 담백함, 심플함, 그리고 겸손함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해 봅니다.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철없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 방황하는 청년을 지나 사회에 나와 회사라는 조직을 경험하며 한 가정을 꾸려 나아가는  50의 가장인 '나',  지금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인간이란 큰 무리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을 채우고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에서 바라볼 때는 '나'는 하나의 우주가 됩니다. '나'라는 시간의 역사도 나만이 색을 칠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로만 살 수 없는 것은 '우리'라는 존재가 같이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란 존재는 겸손하고 담백하며 심플하게 살아갈 때 자연, 인간, 우리, 가족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화려함에 취해 화려함을 전부처럼 생각하는 지금의 시대에 오히려 '겸손함, 담백함, 심플함'이 '나'라는 존재의 명품을 만들어 주는 듯합니다.


'플레인 요거트'의 삶 속에 저는 오늘 아침 '겸손함과 담백함, 심플함'을 배우며 어울릴 수 있는 색을 만들어 갑니다. 자신의 본질을 지키는 단단함도 같이 느낍니다.


이런 '플레인요거트'에서 저는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도 '플레인요거트'의 삶과 비슷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매독환주 買檀環珠

 본질을 버려두고 말단만을 쫓는 풍조  

  신지도에 귀양 갔던 명필 이광사가 해동악부란  책을 짓고 직접 글씨를 썼다. 정약용이 그 책을 빌려 보았다. 이광사  자신이 득의작으로 여겼으리만치 글씨가 훌륭했다.

다산은 내용만 한  벌 베껴 쓰고는 돌려주었다. 사람들이 말했다.

 "상자만 사고  구슬은 돌려준 셈이로군요."

자산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네. 구슬이  상자만 못해도 나는 구슬을 사는 사람일세."

글씨가 값져도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일침, 정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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